"할머니! 이제는 함께 배워가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맞벌이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자연스레 할머니 집에서 자란 손자의 말이다. 학창시절부터 할머니는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해 운동회와 학예회에 참석하셨으며, 학교에서 내준 숙제가 있을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시는 선생님이셨다.
늘 같은 자리에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던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말을 되묻기 시작하였다. 또, 불러도 뒤돌아봐 주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연세가 많아져 노인성 난청으로 인한 청각장애라 설명을 해주셨고 나는 이해하고자 하였지만 믿기지 않았다. 장애라는 것이 나, 우리 가족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지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할머니는 내가 마주 보고 큰 소리로 말하여도 잘 알아들으시지 못하신다. 보청기를 착용하여도 효과를 보지 못하여 금방 떼어내시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내시고 계신다. 그런 할머니에게 내가 "도움을 줄 방법은 없을까?"라고 생각을 할 때 수화가 떠올랐다. 우리 가족이 할머니와 즐겁게 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할머니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나는 실생활에 주로 쓰이는 수화를 책과 동영상으로 익히고 이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가족들에게 알려준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는 '식사는 하셨는지', '춥지는 않은지', '편찮으신 곳은 없으신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따뜻한 소리가 들린다.
지금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어 할머니의 옆자리에 앉아 손을 맞잡으며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 함께 배우던 중 할머니가 나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 단어는 "고맙습니다"였고 나는 "사랑합니다"라고 답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