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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을 마시며01
溫: 마음의 편지 >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지원, 이송연 민요자매의 ‘빛나고 아름답게’

이송연, 이지원 남매가 기와집 사이에서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사진

취재 국립특수교육원 교육연구사 김현태 | 사진 임근재

선천성 장애를 딛고 국내외에 국악을 알리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이지원양은 얼마 전 장애인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라 할 수 있는 ‘2020년 올해의 장애인상(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안고 태어난 그녀는 모든 것이 또래보다 많이 늦었던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350회가 넘는 해외공연과 송소희, 김장훈 등 다양한 음악가들과도 호흡을 맞추며 국악을 알리고 있다. 국악계에서 ‘민요자매’로 유명한 지원양과 최고의 파트너인 동생 송연양 그리고 자매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인 어머니 곽진숙씨를 국립특수교육원 김현태 교육연구사가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국립특수교육원 김현태 교육연구사 사진

Q. <현장특수교육>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이지원·이송연 : 안녕하세요? 저희는 민요자매 대학교 1학년 언니 이지원, 초등학교 6학년 동생 이송연입니다.
어머니 : 엄마 곽진숙입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Q. 김현태 최근 지원양에게 기쁜 소식이 있어서 매우 바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 : 네, 지원이가 ‘2020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면서 취재도 많이 와주시고 감사하게 공연도 하고 그랬어요.

Q. 대통령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원양이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어미니 : 지원이가 두 돌이 되어도 걷지를 못해서 병원에 갔었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는 질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지원이가 성인이 되어도 낮은 지능으로 살게 될 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절망의 시간이었죠. 의사 선생님께서 윌리엄스 증후군 판정을 내리시면서 이런 증후군이 있는 아이 중에는 세계적으로 음악이나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으니 잘 관찰하면서 키우라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당시에는 의사 선생님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지원이의 희귀질환 판정도 잊고 싶었고,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키우면서 지켜보니 음악에 굉장한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젖병으로 우유를 먹일 때도 노래를 불러주면 울음을 뚝 그치곤 했어요.

Q. 여러 음악 장르 중 국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미니 : 처음에는 피아노도 시켜보고, 악기도 시켜봤는데 악보를 볼 줄 모르니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지원이가 음악을 좋아하는데 악보 없이 할 수 있는 음악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공주에 판소리 전수관이 있다는 게 떠올랐어요. 판소리는 전통음악이니 악보 없이 듣고 따라 하면 되니깐 괜찮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무렵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김현태 교육연구사와 이지원, 이송연 자매의 인터뷰 모습

Q. 동생 송연양은 이번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로 선발되었는데, 언니를 따라 민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송연 : 언니가 연습하던 걸 따라 부르니 주변 분들도 그렇고, 언니 민요 선생님도 한번 배워보라고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송연양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언니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거 같은데, 또래 친구들과 조금 다른, 지금의 상황이 힘들지는 않나요?

어미니 : 지원이와 송연이가 8살 터울이라 학교가 겹치거나 그러지 않아서 그전에는 언니가 장애가 있다는 걸 친구들이 몰랐는데 방송에 나오면서 학교에 언니 존재가 알려졌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불쌍해서 어떡하느냐’라고 하기도 하고, 수군거리기도 해서 집에 와서 얘기하면서 울기도 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내색하기보다는 ‘우리 언니는 노래도 잘하고, 국악은 더 잘해’라고 말할 정도로 단단해졌더라고요.

Q. 참 대견하네요. 지금은 장애를 넘어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딸이지만 정작 어머니도 지원양의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미니 : 지원이가 어렸을 때 장애판정을 받았지만 보통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제가 받아들지를 못했어요. 결국 17살이 되던 해에 장애등급을 받았어요.

Q. 그러면 중학교까지는 일반학급에서 생활하다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특수교육을 받게 되었네요.

어미니 : 네, 당시 저는 지원이를 예고에 보내고 싶어서 아는 분의 소개로 진학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 그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예고를 보내고 싶은 건 엄마의 욕심이 아니냐”, “우리 아이가 이렇게 부족한데 ‘내가 이렇게 키워서 예고에 보냈어요’라고 하고 싶은 게 아니냐”고, “지금이라도 장애등급을 받을 용기가 있다면 국가 차원의 울타리 안에서 특수교사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하라”고 “그걸 왜 혼자 안고 가슴앓이를 하느냐”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큰 위로가 되고 마음이 너무 가벼워지는 거예요. 저 혼자만의 일이었고, 혼자서 오롯이 결정해야하는 부담감을 안고 여태 살아왔는데 가슴 속에 막혔던 뭔가가 뚫리면서 그 선생님이 지원이의 앞길을 열어준 느낌이었어요.

자매와 어머니 기념 사진으로 왼쪽부터 이지원, 어머지 곽진숙, 동생 이송연 왼쪽부터 이지원양, 어머니 곽진숙씨, 동생 이송연양

Q. 그 후, 지원양을 특수학급에 보내야겠다고 결심하신 거군요.

어미니 : 네, 그 선생님 말씀에 용기를 내어서 결정하고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로 진학을 했어요. 중학교까지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혼자만 엉뚱한 장소에 가 있거나, 수업이 일찍 끝난 날에 혼자 교문 앞에서 2시간을 떨면서 기다리는 등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집에 가서 전달해야 할 사항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까지도 세심하게 지도해주시는 특수학급 선생님이 계시니 너무 안심이 되었어요. 중3 때까지 지원이를 혼자 외톨이로 지내게 한 게 많이 미안했는데, 친구가 생겨서 즐겁게 학교 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Q. 앞에서도 많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장애를 가진 자녀와 비장애 자녀를 함께 양육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민요자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고정욱 동화작가의 창작동화 책자

어미니 : 지원이에게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보니 송연이 입장에서는 서운한 것도 많았을 거예요. “다른 집은 언니가 동생을 챙기는데 나는 왜 언니를 챙겨야 해?”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는데 힘들고 속상했을 거예요. 그런데도 언니한테는 유일한 친구이자, 소리할 때는 경쟁자로 함께 성장하면서 서로 얻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소통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지원이에게 행복한 삶을 더 일찍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부모님들이 들을 수 있는 강연이나 정보교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가슴앓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민요자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고정욱 동화작가의 창작동화 ©다림

Q. 지원양, 지금까지의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가요?

이지원 : 2020년 올해의 장애인상 축하무대에서 송소희 언니랑 같이 공연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2020년 올해의 장애인상 축하무대에서 이지원양이 국악인 송소희씨와 함께 공연하는 모습 2020년 올해의 장애인상 축하무대 ©한국장애인개발원

Q. 지원양과 같이 예술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지원 : 저도 비록 지적장애를 갖고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꾸준히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고 노력하세요!

Q. ‘민요자매’의 영상을 보면 자매가 손을 잡고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앞으로도 항상 웃으면서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두 분의 꿈을 물어보고 싶어요.

이지원 : 제가 열심히 해서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세계에 우리나라 아리랑을 알리고 싶어요.
이송연 : 국제장애인문화교류협회와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에서 지원해주셔서 올해 11월에 음반이 나올 계획이에요. 노래를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김현태 : 음악이 주는 힘도 있지만, 자매가 살아온 소중한 경험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과 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국악인으로 성장하여 반가운 소식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항상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