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칼럼 - 구아라 족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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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특수교육
2021 WINTER
제28권 4호
(vol. 124)
오픈 칼럼

구아라 족에
대한 명상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김진경 의장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김진경 의장
지지난 해던가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하는 여성이 내 동화 ‘고양이 학교’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찾아왔다. 그리 크지 않은 제작사여서 전부 열여섯 권이나 되는 대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왜 고양이 학교를 그렇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거냐”고 물었다.

“‘고양이 학교’ 1부 여자 주인공 세나는 자폐성장애가 있잖아요? 저희 딸도 마찬가지에요. 자폐성장애가 있는 세나가 세상을 구하는 특별한 사명을 가진 존재여서 자폐성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그 사명을 이루면서 장애에서 벗어나잖아요? ‘고양이 학교’가 워낙 재미도 있고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저는 특히 세나 얘기를 읽으면서 막 울었어요.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 ‘고양이 학교’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보는 게 꿈이 되었죠. 이제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만들어 봤고 해 볼 만하다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우리 애가 자폐성장애라고 커밍아웃을 해 보는 것도 참 처음이네요. 커밍아웃을 안 해서 그렇지 자폐성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의외로 많아요.” 애니메이션 사장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허 참 그러시군요. 그런데 자기 아이가 자폐성장애라는 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일인가요? 벌써 한 십년은 되어 가는데 영국에서 영국인과 결혼해서 사는 교포 여자 분이 찾아와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었어요. ‘고양이 학교’를 남편과 함께 영어로 번역한 분이죠. 번역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물었더니 참 뜻밖의 대답을 하더군요. ‘고양이 학교’에서는 세나가 자폐아여서 세나 엄마가 이혼을 하게 되고 집안 분위기도 어두운 걸로 나오는데 그걸 그대로 번역하면 영국 독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합디다. 영국에선 자폐성장애란 걸 전혀 부끄럽게 여길 이유가 없고 국가적으로 다 뒷받침을 해줘서 그거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어두울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일이라니 참 근래 구두선처럼 얘기하는 다양성이니 차별 철폐니 하는 말들은 다 거짓말인 것 같습니다. 다름을 차이로 인식하여 차별하지 않고 다양성으로 인식하여 존중한다.... 참 말은 좋은데 다양성이 너무 허용되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다양성이란 말을 많이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 영국은 그렇군요. 부럽네요. 우리 애랑 거기 가서 살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사 사장이 꿈이라도 꾸듯이 먼 곳을 보았다.
“저는 그 번역자 분 이야기를 들으며 ‘구아라’족이 생각났어요. 자폐아동들도 그렇고 그 외 장애아동들이 우리 사회의 ‘구아라’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
“‘구아라’족요?” 애니메이션사 사장이 눈을 반짝였다.
“‘구아라’족은 안데스 산맥을 떠돌며 사는데 사람들 눈에 거의 띄지 않는 신비한 부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수십만 년 동안 마르지 않던 산정의 호수가 마른다든지 하는 환경 이변이 일어나면 거의 예외 없이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더군요. ‘구아라’족은 세상이 환경 파괴 등으로 머지않아 망할 거라고 믿고 그걸 예측하며 안데스 산맥의 환경 이변이 일어나는 장소에 어김없이 모습을 나타낸다는 겁니다. ‘구아라’족은 세상이 망하는 원인을 모든 걸 하나로 동일화하고 획일화해 가는 ‘1’의 논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 ‘1’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세상이 망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그래서 세상의 위기와 ‘1’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리는 걸 자기 부족의 사명이라고 믿고 환경이변이 일어나는 장소를 예측해서 찾아다닌다는 거죠.”

“와 정말 신비한 부족이네요. 그 ‘1’의 철학도 정말 매력적이에요, 설득력도 있고. 저도 ‘구아라’족 하고 싶은데요, 자격이 될지 모르겠지만.”
“자격이야 뭐 ‘1’의 철학을 신봉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자녀분이 ‘구아라’족이니까 어머님도 충분히 자격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저랑 ‘구아라’족 하시죠 뭐.”
“그래요. 선생님이 족장 하세요. 저는 부족원 할 테니까. 그런데 자폐아를 포함한 장애아동들이 왜 ‘구아라’족 같다는 거죠?”
애니메이션사 사장이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자폐아를 포함한 장애아동들은 어떻게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다양성을 허용하는가를 재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장애아동들이 아무 차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회는 다양성을 충분히 허용하는 사회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사회는 ‘1’의 논리에 따라 획일적 기준으로 무수한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가 아니겠습니까? 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일 거고, 그런 사회가 되려면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구아라’족이 되어야겠지요.
‘구아라’족은 일종의 선지자 부족이니까 자폐성장애 자녀분은 선지자의 선지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어요. 선지자의 선지자는 원래 좀 어려움을 겪지요.”

모든 것을 하나로 동일화하고 획일화하는 ‘1’의 논리는 결코 무지의 결과로 나타난 게 아니고, 차별체계와 학벌 같은 그 결과물들은 결코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나타난 게 아니다. ‘1’의 논리는 산업사회가 전쟁과 같은 극단적 폭력을 포함하는 총력을 기울여 구축한 논리이며, ‘1’의 논리를 실현하는 고도로 중압집권적인 국가체제, 세계체제가 총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것이 차별체계와 학벌 같은 결과물들이다. 그리고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 역시 이 ‘1’의 논리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는 체제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거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하나로 동일화하고 획일화하는 ‘1’의 논리를 넘어서 ‘다름을 차이로 보아 차별하는 게 아니라 다양성으로 보아 상호 존중하는’ 방향으로의 아름다운 개혁이 가능할까?

90년대 말 우리나라가 IMF 관리체제를 겪을 때의 이야기이다. 친구가 사업이 망해서 딸아이를 아는 사람이 하는 보육원에 잠시 맡겼다. 그 보육원은 장애아동들만 수용하는 보육원이었다. 친구는 아이가 장애아동들과 잘 어울릴까 걱정이 되어 수시로 가 보았다. 처음에 아이는 장애아동들은 불쌍한 아이들이니까 도와주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나니까 ‘장애아동들도 나랑 하나도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고, 좀 더 지나자 장애아동이라서 다르니 안 다르니 하는 말 자체가 없어지고 똑같이 웃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지냈다. 친구는 그제야 안심을 했다. 우리 사회는 위 세 단계 중 어느 단계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장애아동은 불쌍한 아이들이니까 도와줘야 돼’보다 전 단계에 있는 것일까? 어느 단계에 있든 그것이 우리사회가 다양성을 허용하는 수준일 것이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을 이런 저런 다른 이유들로 차별하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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