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교육과정은 그 나라의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기초지식 및 기술의 큰 틀을 제공한다. 나는 한국에서 교육받고 특수교사가 되기까지 한국 교육과정에 따른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에 영국 중등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영국국가 및 학교교육과정은 참 색다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를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영국의 교육과정, 그 배경은?
영국의 교육개혁법 1988(Education Reform Act 1988)은 잉글랜드교육에 세 가지 중요핵심을 바꾸었다. 첫째, 잉글랜드 지역에서 사용하는 국가수준 교육과정 (The National Curriculum for Education)을 도입하였다. 둘째, 키스테이지(Key Stage)라고 불리는 ‘주요교육단계’를 1부터 5까지 구분 및 도입하여 초, 중고등학생들이 각 주요교육단계에 따라 배워야 할 과목과 성취목표를 명시하였다. 셋째, 이 법안을 통해 더 이상 시 · 도가 아닌 각 학교급에서 학생 교육을 위한 재정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주요교육단계-키스테이지(Key Stage)
각 주요교육단계를 살펴보면 초등학교는 주요교육 단계의 1단계(1~2학년)와 2단계(3~6학년)이다. 중고등학교는 주요교육단계 3단계로 한국의 중학교 1~3학년(영국의 7~9학년)과 주요교육단계 4단계인 한국 고등학교 1~2학년(영국의 10~11학년)이다. 주요교육단계 5단계는 고등학교 3학년과 전공과 2년(영국의 12~14학년)으로 나뉜다. 주요교육단계가 끝나는 학년을 대상으로 학생들은 국가시험에 참여하는데, 주요교육단계 1과 2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2학년과 6학년은 영어와 수학, 주요교육단계 3에 해당하는 중학교 3학년은 시험이 없고, 주요교육단계 4인 고등학교 2학년과 주요교육단계 5에 해당하는 14학년들은 전 과목 국가시험을 치른다.
영국의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은?
일반학교 또는 특수학교에 재학하는 특수교육 대상학생들 또한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교육 받는다. 하지만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을 위한 법정지침이 따로 존재한다. 이것은 특수교육대상 0세부터 25세까지를 아우르는 ‘특수교육실천강령: 0세에서 25세까지(SENDcode of practice: 0 to 25 years)’이다. 이 법령 지침은 시 · 도교육청, 영국국민보건서비스, 각 학교, 사회복지서비스 등 0세부터 25세까지 특수교육대상학생의 교육과 관련해 있는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법적 지침이다. 이 지침에 따라 유아기 때부터 모든 아동에게 각 나이에 맞는 교육적 발달평가를 진행하고, 조기중재가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한다. 일반학교 및 특수학교에 재학하는 특수교육대상학생들에게 25세까지 교육 및 건강관리계획(한국의 개별화교육계획서)에 따른 교육이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25세를 끝으로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을 지역사회 사회복지서비스 등으로 이관시켜 성인으로서 지역사회에 정착하여 최대한의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도록 한다.
영국의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
영국의 학교들은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각 학교의 비전 및 교육가치에 맞게 차용하여 운영한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특수교육대상학생수가 재학 중인 영국버밍엄(Birmingham)에 위치한 셀리옥트러스트 특수학교(Selly Oak Trust School)에서는 각 주요 교육 단계(Key Stage)에 따라 배우는 교과목에 차이가 있다.
영국특수교사는 어떻게 수업하고, 학생을 평가할까?
영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 두 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국에는 따로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많은 교과 수업들이 급수체계로 나누어진 시험을 공부하여 자격증을 취득한다.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 영국?
교육과정평가(the 2010 National Curriculum review)의 총책임자였던 팀 오츠(Tim Oates)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경우 오직 4퍼센트의 과학교사만이 과학 관련 교과서를 토대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 영국교육 문화의 장, 단점을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가장 큰 장점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연간교육계획(Scheme of work)의 큰 틀에 맞춰 학생을 가장 잘 아는 교사가 개개인의 학생의 개별화 수준에 맞춰 학습자료를 만들기 때문에 학생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단점은 무엇일까? 바로 많은 교사가 학습자료 제작에 큰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이다. 교과서가 없다 보니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할 파워포인트 자료와 학습지를 직접 스스로 만들거나 학교에서 만들어둔 기본 자료를 학생 개별특성에 따라 수정하고 개인 자료를 더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학습자료제작에 큰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주말에도 집에서 일하는 교사들을 흔하게 볼 수 있고, 만들어진 학습자료를 쉽게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유료학습자료 사이트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우리 반 학생들을 위해 만든 수준에 따른 학습지 예시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준비하는 교과시험 자격증
영국의 많은 과목의 시험이 난이도에 따라 초급(Entry level 1)부터 고급(Level 3)까지 급수로 나누어져 있다. 학생들이 해당 급수 시험을 통과할 경우 자격증(qualification)을 받는다. 이 자격증은 훗날 전문대, 대학교에 진학하는 데 사용된다. 쉽게 생각해 많은 과목이 한자 급수시험이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처럼 급수가 있고, 급수 자격증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학교나 과가 나뉘는 것이다. 이러한 급수 자격증은 영국 내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꼭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수학, 영어 등을 공부하는 이민자, 구직자들도 이러한 교과시험을 준비한다.
자, 그럼 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교과시험 자격증을 준비하는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나는 현재 주요단계 5의 12명이 한 반인 12, 13학년의 담임을 맡고 있다. 영국의 전국 11학년 학생들이 학년 말기에 실생활 영어시험(Functional Skills Exam)이라고 불리는 시험을 치르는데, 우리 반의 영어 수업시간을 살펴보면 전 과목 시험인 ‘지시에스이영어시험(GCSE English)’보다 한 단계 낮은 영어시험종류를 택해서 가르치고 있다. 학생의 학습수준에 따라 13학년 4명, 12학년 1명이 초급 2(Entry Level 2) 단계의 영어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시험을 올해 준비하고 있고, 12학년 2명은 초급 1(Entry Level 1)을 준비하고 있다. 2명의 13학년과 3명의 12학년 학생들은 실생활 영어시험보다 더 낮은 단계에 옥스퍼드대학교(Oxford University)에서 발행된 영어 기초 파닉스 관련 단어, 문장 읽고 쓰기 등을 공부하고 있다. 두 번째 예로는 아스단(ASDAN)이라고 불리는 자격증을 소개하고 싶다. 아스단은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의 다양한 학습요구와 능력을 고려해 만들어진 특별프로그램으로서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의 개인 및 사회개발, 고용 가능성 증진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특수학교에서 이 자격증을 이용해 수업하며, 특수교육대상자가 있는 일반학교 특수교육반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1년마다 아스단시험 검정팀이 학교에 방문해 학생이 만든 수업포트폴리오와 각 모듈, 주제마다 어떻게 학생이 수업에 참여했는지에 관한 교사의 의견서를 보고 자격증을 부여한다. 각 모듈은 방법 알기(Knowing How), 선택하기(Making Choices), 기분 좋음(Feeling Good), 어른으로 성장하기(Moving Forward), 홀로서기(Taking Lead)와 같은 5개의 모듈로 나누어져 있으며 모듈마다 영어, 수학, 과학, 디자인, 외국어, 정보기술, 종교교육, 영국시민교육, 지역생활, 표현예술, 가정, 레크레이션, 스포츠와 레저, 직업관련, 역사, 지리, 온라인안전, 성교육까지 18가지 주제로 수업을 할 수 있다.
다음은 얼마 전에 수업한 방법 알기 모듈 속 외국어 관련 수업 내용이다. 학습목표는 ‘외국어로된 단어를 듣고 이해할 수 있다.’이며, 책에 예시로 색, 숫자, 요일, 음식, 인사 등을 배울 수 있다고 적혀있다. 나는 이 중에서 학생 또는 학부모의 출신 나라를 선택해 6개국(스페인, 프랑스, 한국, 인도, 파키스탄, 짐바브웨)의 인사말을 가르쳤다. 같은 인사말을 배우지만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따라 난이도를 상, 중, 하로 나누어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과정을 끝낸 학습지는 파일에 차곡차곡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아스단자격은 실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며 아무리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였다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밖에도 영국의 주요교육단계 5에 있는 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 전공과 2년(영국의 12~14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경우 학교와 연계된 다양한 기업에서 다양한 직업실습을 한다. 예를 들자면 캐드버리초콜렛공장, 유치원, 대학교 장애 관련 강의보조, 자선 단체 가게, 슈퍼마켓, 커피숍, 공연장, 사무실, 박물관, 노인주간 보호시설 등이 있다.
위 내용으로 한국과는 다른 영국의 교육과정과 영국의 실제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특수교육 수업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주요교육단계 5의 영국 12~14학년 학생들의 직업체험사진들
출처
- Education Reform Act 1988
- National curriculum in England: framework for key stages 1 to 4
- SEND code of practice: 0 to 25 years
- https://www.sellyoak.bham.sch.uk/Learning/Curriculum/
- https://www.cambridgeassessment.org.uk/Images/181744-why-textbooks-count-tim-oates.pdf
- https://twitter.com/selly_o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