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자폐증1) 수용의 달
플로리다 레온 카운티의 공립 도서관인 리로이 콜린스(LeRoy Collins) 브랜치 도서관에 얼마 전 특별한 섹션이 마련되었다. 도서관 정문 바로 안쪽에 자폐성장애 관련 도서들을 선별해 두고, 감각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구 자료를 무료로 배포하였다. 그동안 교육학, 특수교육학 서가를 살펴보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도서들이 있어 그중 두 권을 대출하고, 교구 재료가 담긴 종이백을 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종이백에 인쇄된 QR코드를 이용하여 링크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미국의 자폐증 수용의 달(Autism acceptance month)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한다.
도서관의 특별 섹션 외에도 레온 카운티의 여러 기관에서는 4월 한 달간 자폐증과 신경 다양성을 기념하는 행사(Celebration of Autism and Neurodiversity)들을 개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복합문화공간인 레일로드 스퀘어에서는 신경 다양성을 주제로 하는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도시 중심에 위치한 메인 라이브러리 광장에서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14개 단체가 모여 박람회(resource fair)를 개최한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4월 마지막 주를 자폐증 수용 주간(Autism Acceptance spirit week)으로 정하여 요일별로 상징적인 옷을 입을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한다. 무지개색으로 염색된 티셔츠를 입는 날도 있고, 감각 다양성을 수용하는 의미에서 편안한 잠옷을 입는 날도 있다. 참여하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특별한 옷을 친구들과 함께 입는 것을 아이들이 즐거워하여 하루 이틀 정도는 참여하곤 한다. 이런 행사들이 종종 있어서인지 동네의 월마트에서도 “Autism, Different not Less(자폐증,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와 같은 문구가 무지개색 로고와 함께 인쇄된 티셔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 특별 세션의 자폐증 관련 도서
▲ 감각 다양성 관련 교구
▲ 기념행사 일정
이곳에서 무지개색이 자폐증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이는 것은 자폐인의 성향이 그저 장애가 아닌 다양성의 하나로 존중받아야 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과 함께 점차 주류가 되고 있다. 자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독특한 언어적, 사회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의 감각적 특성을 수정하기보다 강점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폐증 수용의 달 또한 5년 전까지는 자폐증 인식(awareness)의 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가, 자폐의 특성을 ‘인식’함으로써 구분 짓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며 용어를 ‘수용’으로 변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 자폐증 수용 주간 공지
미국의 장애인식교육 관련 법령
도서관과 초등학교의 행사를 접한 후, 플로리다의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장애인식교육에 대해서도 찾아보았다. 플로리다는 4월 외에도 10월의 첫 주와 둘째 주를 장애 역사와 인식 교육 주간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2008년 6월에는 장애 역사와 인식 교육에 대한 법령을 제정하였다. 법령의 일부 내용은 아래와 같다.
1003.4205 장애 역사와 인식 교육(Disability history and awareness instruction)2)
10월 첫 두 주간 학생들은 장애를 가진 개인, 장애의 역사, 장애 권리운동에 대한 지식, 이해 및 인식을 확장하기 위해 집중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은 자격을 갖춘 교직원이나 지식이 풍부한 초청 연사에 의해 전달될 수 있으며 특히 장애가 있는 개인을 포함하는 데 중점을 둔다. 장애 역사 및 인식 교육의 목표는 (1) 장애를 가진 개인에 대한 따돌림 또는 괴롭힘 방지에 대한 관심 증가, (2) 장애가 있는 개인이 자존감을 높이도록 독려, (3) 모든 장애인을 사회에 완전히 포함시키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지역, 주 및 연방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 제25조를 통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으나 미국은 각 주마다 다른 형태로 법령이 있다. 위 법령은 플로리다 초중등교육법인 PUBLICK-12 EDUCATION 챕터에 속해있다. 교육의 내용과 목적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인상적이며, 특히 장애가 있는 개인을 연사로 초청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거나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기재한 부분에서 법령의 제정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공교육 현장의 장애인식교육
플로리다 교육 현장에서 위 법령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2008년 이후 미국의 공교육을 경험한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에서 특수교육(Exceptional student education)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파멜라바레라(Pamela Barrera)씨는 장애학생의 사회 통합에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으로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장애의 특성이나 장애를 가진 개인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물어보았다.
파멜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요. 다른 지역에서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다들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해요. 학부에 들어온 이후에야 장애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었고 그들의 권리, 통합과 존중의 필요성 등을 알게 되었어요.”
경험한 적이 없다는 답변에 놀라며 법령을 보여주자 그녀는 “표현을 봐야 해요. 교육을 받아야 한다(should)가 아니라 받을 수 있다(may)고 적혀 있잖아요. 이건 그냥 선택지가 있다는 뜻일 뿐이고 제가 다닌 학교에선 그걸 선택하지 않았어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의 날이 되면 학생들이 장애 인식 다큐멘터리를 보고 토론을 하거나,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를 체험해보는 등의 수업 시간을 종종 갖는다고 이야기하자 흥미로워하며 미국의 공립학교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장애 인식에 대한 플로리다의 교육과 사회 운동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파멜라:
“지난 수십 년 동안 플로리다의 장애학생의 통합과 존중에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요. 대학에서 함께 하는 제 친구들이 장애 수용과 다양성 존중을 위한 헌신과 열정은 놀라울 정도예요. 저는 그게 장애학생의 완전한 통합과 차별없는 학습을 위한 싸움의 핵심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게 자랑스러워요.”
우리는 다양성과 통합을 위한 미국의 교육 제도는 이미 이상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문제는 플로리다, 즉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파멜라는 제도와 실현의 사이에 놓인 것은 개개인의 선택과 의지이고, 자신은 ‘변화와 진전’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열정적으로 말했다.
마치며
미국의 교육 제도는 전반적으로 학교 구성원의 선택과 자율을 중요시한다. 플로리다의 장애 인식 교육 또한 지역의 기관이나 학교의 행사, 법령 등을 통해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형태로 보인다. 지지를 표현하는 옷을 함께 입는다거나, 지역의 문화 공간에서 박람회를 여는 등의 행사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장애를 인식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에 접근하지 못했던 것을 자신이 받은 교육의 한계로 기억하는 파멜라의 이야기 또한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파멜라가 말하듯, 그녀와 같은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갈 특수교육과 장애 인식, 수용 교육은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기대가 되고, 대한민국의 특수교사로서 우리의 교육 현장 또한 반성과 새로운 자극을 통해 성장해 나가길 기대한다.
각주
- 원어 표기가 Autism인 점을 고려하여, 자폐성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가 아닌 자폐증으로 번역하였다.
- 법령의 전체 원문은 ‘Florida Statutes 1003.4205’를 검색하거나, 해당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s://www.flsenate.gov/Laws/Statutes/2012/1003.4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