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과에 입학한 뒤로 매년 4월 20일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매년 대학교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날에는, 대학교 인근에 있는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을 초대하여 특수교육과 학생들과 특수교육 대상학생들이 1대1로 짝을 지어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고 공연도 관람하였다. 교생실습을 하던 4월에는 일반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 수업지도안을 작성해 보기도 했었고, 한국에서 특수교사로 근무 중인 선후배들에게서 장애 이해교육 준비로 한창 바쁘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다양성을 인식하다
세상에는 시각·청각·지체장애와 같이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장애가 있지만 장애 정도에 따라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알기 쉽지 않은 장애도 많다. 2020년 12월 통계에 따르면 영국에만 14만 명의 사람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리즈 대학교(Leeds University)의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장애 중 약 70%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라고 한다. 다시 말해 평소에는 유난히 덜렁대지만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사람, 글을 읽거나 보고서 작성은 힘들지만 뛰어난 대화기술을 보여주는 사람, 사회성은 결여됐지만 머리로 생각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사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오른손잡이라고 해서 왼손잡이를 비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처럼 두뇌 신경의 처리 방식이 다른 장애인들(예: 자폐범주성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난독증(학습장애) 등)의 정보 처리 특성은, 비정상이 아닌 ‘두뇌 신경의 다양성’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 신경 다양성을 가진 유명인들을 통한 신경 다양성 홍보 포스터
다양성을 존중하다
‘뉴로다이버시티(Neurodiversity)’는 한국에서는 평소에 쓰이지 않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영어권 국가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주 쓰는 용어 중 하나이다.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뇌를 사용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보통 사람이 뉴로티피컬(Neurotypical)이며, 이와 구분하여 전형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사람은 신경 다양성을 가진 사람 즉, 뉴로다이버전트(Neurodivergen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장애를 가진 개인의 두뇌 신경의 다양한 처리방식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런 특성은 강점이 되어 직업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예로 영국의 소프트웨어 회사 에스에이피(SAP)는 신경 다양성을 가진 직원 채용을 위해 채용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였다. 현재 에스에이피(SAP)는 신경 다양성을 지닌 직원들이 엔지니어링, 연구 개발, 인사, 데이터 보호 및 고객 지원을 포함한 20개의 서로 다른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생산성, 창의성 및 효율성 향상에 신경 다양성을 가진 이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 영국 소프트웨어 회사 에스에이피(SAP) 인도 지부에서 소프트웨어 테스트팀 (Software Tester)에 근무하고 있는 에이샤(Asha) 씨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을 기념하다
3월 21일부터 27일까지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신경 다양성 기념 주간(Neurodiversity Celebration Week)이다. 바로, 신경 다양성을 홍보하고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시기이다. 올해는 이 기간에 영국 전역에 있는 특수학교, 일반 초·중·고등학교 1,000개가 넘는 학교에서 신경 다양성을 기념하는 데 참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마존(Amazon), 약국형 마트 부츠(Boots), 넷플릭스(Netflix) 등 다양한 기업, 자선단체와 영국 정부까지 참여하였다. 나아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총 29개 나라에서 이를 기념하고 있다.
▲ 신경 다양성 기념 주간 영국 학교에서 진행한 활동 예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에 소통에 기여하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 ‘커뮤니케이트 투유(Communicate 2 U)’
커뮤니케이트 투유(Communicate 2 U: 당신과 소통하다)라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은 내가 사는 도시이자 영국 제2의 도시인 버밍엄(Birmingham)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이다. 줄여서 씨투유(C2U)라고 불리는 이 기업은 버밍엄 지역에서 여러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및 병원들과 합작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셀리옥 트러스트 특수학교(Selly Oak Trust School)에도 이 사회적 기업과 합작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2개의 학급이 있는데, 내가 담임인 특수교사 중심의 씨투유 12, 13학년(12/13 C2U)과 작업치료사와 직업 훈련사가 주축이 된 씨투유 14학년(14 C2U)이다. 씨투유(C2U)는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신경 다양성을 가진 자신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당당한 성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학생들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는 신경 다양성을 가진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의사소통 전문가(Communication Expert)가 되어 의료 및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및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이는 대학교 수업 및 직업 연수의 정기적인 참여이다. 이들은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을 상대로 상황을 설명하는 연습을 하고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은 이들의 구두언어 및 비언어적 요소(몸짓, 표정 등)를 통해 자신의 입장에서 상황 이해가 쉬웠는지, 어떤 점이 어렵게 느껴졌는지 등에 대해서 피드백을 준다. 이를 통해 의료나 사회복지전공 대학생들 및 의료계 종사자들은 신경 다양성이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 씨투유(C2U) 반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이 인근 대학교에서 의료계 전공 대학생들에게 신경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
혁신적 사고의 가능성, 신경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
아시아 지역에서도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등 여러 국가에서 신경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기념하고 있다. 신경 다양성의 인식과 존중은 다양한 인재를 고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혁신적 사고가 필요한 산업에 큰 이점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다양성에 대한 개념이 교육 현장 및 사회 전반에 잘 알려지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참고자료
- https://www.neurodiversityweek.com
- https://post.parliament.uk/approved-work-invisible-disabilities
- https://twitter.com/stmodans_psd
- https://twitter.com/communicate2u
- https://mobile.twitter.com/astanleygarston
- https://www.raconteur.net/hr/diversity-inclusion/neurodiversity-workplace-hr
- https://www.sap.com/uk/about/careers/who-we-are/our-people/employee-story-finder/sreedhar-asha.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