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은 ‘코로나가 서구의 거만을 드러내다(Corona offenbart die westliche Arroganz)’라는 제목 하에, 독일이 아시아의 코로나19 대응 전략을 적극 배우지 않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동양사회를 향한 서양의 ‘거만’에 기인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그 거만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교육정책도 본받지 못하고, 결국 독일교육이 후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근 일반학교 및 특수학교 교사 1,015명에게 ‘각 연방주의 코로나19 위기 대처 능력(학교 부분)’을 평가하는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1%만이 ‘수’를, 30%는 ‘미’를, 50%는 ‘가’라는 성적을 매겼다(Deutsches Schulbarometer, 2021). 여기에서는 현재 독일 (특수)교육정책은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일까? 과연 코로나는 독일의 거만을 드러내는가?를 살펴보겠다.
▲ ‘코로나가 서구의 거만을 드러내다’ 기사 화면
(이미지 출처: Der Tagesspiegel 홈페이지)
독일은 지난해 12월 16일 2차 락다운이라는 전국 단위의 봉쇄조치를 발령했다. 병원, 약국, 생필품 매장 등 일명 ‘사회필수직종’을 제외하곤 모든 시설이 문을 닫았다. 교육기관은 다시 원격수업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정부는 단계적 봉쇄완화조치를 통해 학교 수업 재개를 최우선으로 하며 2월 22일부터 등교수업을 허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등교 상황은 연방주별로 상이한데, 대체로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반이 먼저 등교를 시작했다(3월 8일 기준). 참고로 독일은 8~9월에 새학기가 시작하므로 현재 개학과 관련한 혼선은 없다. 이러한 가운데 정작 현장에는 등교수업을 위한 방역 및 인력 차원의 준비가 여전히 미흡해 우왕좌왕하는 학교가 많다. 원격수업 운영도 아직까지 혼란스럽다.
방역 차원의 과제: 학교 방역 강화부터 공기청정기 도입까지
등교수업을 재개하며 학교는 방역 수칙을 한층 강화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연방주는 올해부터 수업 중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 그러나 작센주 같이 교내 마스크 착용은 의무로 하되, 수업 중이나 방과후 돌봄 시간에는 마스크를 벗는 것을 허용하는 연방주도 있다. 특수학교나 일반학교는 장애학생의 개별 특성에 따라 마스크 규정을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3월부터는 교직원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백신 우선 접종의 두 번째 그룹에 속한 유치원·초등학교·특수학교 교직원(학습보조인력 포함)을 시작으로 하고, 이후 세 번째 그룹에 속한 중·고등학교 교직원들이 접종을 받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초미세 입자 필터가 장착된 공기청정기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100% 가까이 제거한다는 여러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독일 정부는 각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지원하는데 약 5억 유로(약 6,8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문제는, 정부 예산이 실제로 현장에 투입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다, 한 대당 약 3,000유로(약 4백만 원)하는 공기청정기를 모든 학교에 충분히 배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베를린주는 현재 예산안대로라면 각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고작 1대만 제공가능하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직접 돈을 모아 공기청정기를 구입해 주기도 한다.
▲ 교실에 이동식 공기청정기를 두고 수업하는 모습 ⒸMaximilian von Lachner
수년 전부터 교사 부족난에 허덕이는 독일은 코로나19로 인해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교사 부족은 잦은 수업 취소로 이어지고(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지적장애 특수학교 39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일주일에 평균 4~5시간의 수업이 취소되고 있다), 디지털교육 연수를 제대로 받지 못한 교사가 많아 원격수업을 위한 디지털 지식과 기술이 부족한 사례가 자주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지 않은 학교가 원격수업뿐 아니라 대면수업을 운영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독일 정부는 교직 이수 중인 대학생과 비교직 이수자들도 학교현장에 조기 투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더욱 심화된 교사 부족난을 해결하기 에는 역부족이다.
원격수업 차원의 과제: 디지털교육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독일
현재 독일 학교의 원격수업 상황은 매우 상이하다. 이미 디지털 수업 경험과 노하우를 겸비한 학교가 있는가 하면, 그러지 못한 학교도 많다. 후자의 경우 디지털 기기 부족, 광역 인터넷망 미흡, 교사의 디지털 역량 부족 등의 이유로 원격수업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로버트 보쉬 재단(Robert Bosch Stiftung)이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교사)의 38%만이 학교가 원격수업을 위한 기반을 어느 정도 잘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게다가 특수학교의 약 80%는 원격수업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독일 정부는 추경 70억 유로(한화로 약 1조 3천억 원)를 편성하여 디지털교육을 집중 지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부 주도의 일률적이고 체계적인 디지털 학습 콘셉트가 아직 개발되지않아 학교 단위는 자체적으로 교육환경을 구축해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작센주 교육부장관은 “그동안 우리는 디지털 기반 교육을 부차적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한 순간에 대면수업이 사라지고 100% 원격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우리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 라고 고백한다.
독일교육노조(Gewerkschaft Erziehung und Wissens chaft)는 “코로나 시대에 교육부는 장애학생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정부가 수시로 발표하는 교육 방침이 특수학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가 아직까지도 불분명해, 특수학교는 정부 방침을 자체적으로 해석하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실정이다.
‘코로나가 독일의 거만을 드러내는가’에 답하기 앞서, 우리는 독일 교육 정책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독일 교육은 원칙적으로 각 연방주의 사안이다(Bildung ist Ländersache). 독일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조치를 결정할 때 먼저 ‘연방-연방주 총리 회담’, 쉽게 말해 정부와 지자체의 공동회의를 거치는데, 흥미로운 점은 공동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을 연방주가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연방주의 상황에 맞춰 조정하고 변경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연방주의 자율성이 강하게 보장되는 독일교육은 다양하고 창의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이러한 ‘교육 연방주의(Bildungsförderalismus)’는, 어느 때보다 일관적이고 신속한 지침이 필요한 학교와 학생, 학부모를 오랜 시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또한 독일 교육 현장의 다양성 및 통합 현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현재 독일에는 이민 배경 학생의 비율이 40%에 육박한다. 따라서 장애학생들의 언어·종교·사회문화적 배경이 매우 다양하다. 게다가 일반학교에 통합된 장애학생은 (별도의 특수 학급이 없는 상태에서) 완전통합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조건에서 학교는 코로나19 시대에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원격수업을 통해 통합교육과 동시에 개별화교육을 실현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게 되었는데, 정부의 코로나19 교육 정책은 이 부분에서 구체적인 방향이나 콘셉트를 제공하지 못했다.
코로나는 독일의 ‘거만’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지난 수년간 공들여 쌓은 ‘통합’이라는 탑이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은 ‘거만’해서 아시아 국가들에게 배우지 않는 게 아니라, 아시아와는 다른 사회·문화·교육적 특징이 있기에 배움 자체가 힘든 것이다. 물론 한국의 우수한 디지털 인프라와 같은 성공 사례를 제때 배우지 못한 건 분명 큰 실수이다.
이제 독일은 지난 1년간의 실수를 통해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가 21세기의 마지막 팬데믹(Pandemic)은 아닐 테니까.
자료출처
- https://www.kmk.org/aktuelles/entscheidungen-der-kmk-inder-corona-krise.html
- https://www.dw.com/de/corona-pandemie-herausforderungdigitales-lernen/a-56172231
- https: //taz.de/Menschen-mit-Behinderung-und-Corona/!5741849/
- https://deutsches-schulportal.de/unterricht/lehrerumfrage-deutsches-schulbarometer-spezial-corona-krisefolgebefragung/
- https://deutsches-schulportal.de/expertenstimmen/corona-warum-die-schulen-so-unzufrieden-sind-mit-derbildungspolitik/
- https://www.tagesspiegel.de/politik/warum-wir-nicht-vonasiatischen-laendern-lernen-corona-offenbart-die-westlichearroganz/26893480.html
- 사진 1: https://www.tagesspiegel.de/politik/warum-wir-nichtvon-asiatischen-laendern-lernen-corona-offenbart-die-westliche-arroganz/26893480.html
- 사진 2: https://www.faz.net/aktuell/rhein-main/schule-unddas-coronavirus-luftreiniger-in-jedem-raum-17017213/kampfden-viren-in-jedem-7017222.html#fotobox_1_7017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