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대구성보학교 교사
그간의 특수교사로서의 교직생활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학생들과 그림을 그리는 시간입니다.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무언가를 함께 그려 내는 과정과 예기치 못했던 우연의 결과물은 다음 시간을 또 기대하게 만듭니다. 낙서가 될지 작품이 될지는 그 순간과 의도가 결정합니다. 그날의 기분을 담아 그린 동그라미 하나도, 마구 끼적인 낙서들도 학생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쏟아낸 것은 무엇이든지 예술 작품이 되니까요. 그런 순간을 우리끼리만 나누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미술동아리를 꾸렸습니다. 학생들의 낙서를 모아 함께 책을 만들어 보겠다는, 다소 모험 같은 이 과정을 ‘락서꾸러미’라는 이름에 담았습니다. ‘락서꾸러미’는 낙서가 락서(樂書: 즐거울 락, 책 서)가 되는 ‘대구성보학교의 미술동아리’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동아리에서 아이들과 담고 싶은 것은 우리 학교의 이야기였습니다. 각자의 그림체로 완성된 학교의 장면들을 보며 이 그림들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 고민하다가 그림 속의 순간들을 함께한 교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의 그림과 교사의 글로 짝을 지어 한 편의 책을 엮으면 어떨지 생각했습니다. 마음의 간격도 함께 엮는 일이 되기를 기대하며 몇몇 교사들에게 글을 부탁했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이 머뭇거리던 교사들의 마음을 움직여 교장, 교감을 비롯한 여러 교사가 글쓰기에 함께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의 이야기가 엮어졌습니다.
대구성보학교 그림책
<그냥 우리 학교 이야기>
교사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주제는 절반 이상이 학생들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교사들끼리 “오늘은 학생 이야기 금지, 학교 이야기 금지”라고 못을 박고 시작할 정도로 교사들은 학교와 학생들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수교사가 아닌 가족이나 친구, 다른 분야의 교사들과 대화하면서 난감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는데요. 저는 그저 아이들과 재미있었던 일,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었을 뿐인데 이야기 속의 학교가 특수학교라는 이유로, 이야기 속의 아이들이 장애학생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은 제 이야기에 웃어도 될지 고민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말이지요.
특수학교는 숨겨진 비밀의 학교 같습니다. 이곳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특수교사인 저조차도 특수학교에 부임하기 전에는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앉으라고 둔 의자보다 사물함 위를 더 좋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취향에 맞지 않는 급식 메뉴에 나라를 잃은 것처럼 서럽게 울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가 태어나 자라며 자연스레 또는 당연히 하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 트로피 같을 때가 많습니다. 또 이곳은 모두가 약속된 언어가 아니라 각자 다른 1인 1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각자의 언어, 몸짓, 행동, 각자의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 표현이 잘 전해지지 않으면 다소 거친 항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을 꺼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학교와 학생들을 친근하게 소개하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요. 특수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따뜻하게 전해지고, 이 이야기가 내 친구의 이야기가 되고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냥 하는 우리의 이야기에 웃어도 될지, 진지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에 ‘웃어도 됩니다. 그냥 우리들의 이야기니까요’라고 말해주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별다르지는 않은 그냥 우리 학교의 이야기, 마음 열어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