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윤 밀알복지재단 밀알문화예술센터 간사
우리 사회는 학령기, 성인기를 막론하고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제고와 다양성 교육을 목표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중 장애학생들이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배우고 성장하는 통합교육은 사회통합의 기초로 여겨지는데, 이는 장애학생들에 대한 과거의 고립적·단절적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다름을 배우고 협력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학교에서 12년 동안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으면서 생활하지만 문제는 학령기를 벗어난 이후이다. 발달장애인 학생을 키우는 보호자들은 물심양면으로 교육을 지원하지만, 성년이 되는 시기를 맞닥뜨리게 되면서 자신의 아이가 앞으로 직업을 갖고 자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낀다. 특히나 안정된 직업을 가질 기회가 적은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청소·미화, 임가공, 공산품 제조 등 재활 측면에서 바라본 단순 반복 업무의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밀알문화예술센터는 장애를 재활의 관점이 아니라, 개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브릿지온 아르떼(Bridge On Arte)’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자발적 예술 활동을 통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여, 통합‘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합‘사회’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2024년 4월, 브릿지온 아르떼 정기전
Bridge4US 함께하는 우리
‘브릿지온 아르떼’는 발달장애인 성인 예술가들의 고용을 통해 예술적 잠재력을 사회속에서 실현하고자 시작되었다. 2020년 3월에 결성되어, 서울을 시작으로 대전, 대구 등 점차 소속 작가들의 활동 지역을 전국으로 넓혀나가고 있다.
단원들의 예술적 재능은 대부분 통합교육 과정 중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학습하며 독창적인 개성으로 발전되었다. 재능이 있는 학생 중 일부는 다양한 기회로 밀알복지재단의 아동 청소년 미술교육지원사업 ‘봄 프로젝트’, 발달장애인 성인 예술가 양성사업 ‘IBK 드림윙즈’를 거치게 되고, 최종적으로 고용을 실현하는 ‘브릿지온 아르떼’로 합류한다.
예술 활동을 통해 자아를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하며, 나아가 그들의 작품이 가지는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는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브릿지온 아르떼 예술단은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에게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예술가 당사자들과 보호자들은 자존감을 높이고, 미술 작품을 통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있다.
나이, 성별, 집중하는 소재와 기법이 모두 다른 만큼, 개성 넘치는 발달장애인 예술가 8인이 브릿지온 아르떼에서 매 분기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에서 활동 중인 작가 최석원은 학창시절 비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며 동물을 그리곤 했다. “어머니, 석원이가 그림을 잘 그려요. 도화지가 꽉 차게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최석원 작가 어머니께 학교 미술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당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고 어머니는 회상하셨다. 하지만 이런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최석원은 어엿한 미술작가가 되었고, 이제 그림으로 사람들과 만난다. 그는 사람과의 눈 맞춤이 어려웠던 대신, 시선을 동물로 돌려 자신이 이상적으로 상상하는 가족, 친구, 공동체의 형태를 동물 캐릭터로 재탄생시켜 왔다. 최근에는 다양한 사회 참여를 기점으로,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그림을 직접 설명하면서 관객들과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외부로의 문을 닫아버리는 자폐성장애 1급을 가진 그가 전시회, 강연 등 사회 활동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확연한 변화였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김지우 작가는 어린 나이부터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어, 밀알복지재단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9년이 넘어간다. 중증 자폐성장애를 가진 김지우 작가는, 다른 누군가와 대화하기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청소년기부터 자화상을 그리는 스타일이 분명했다. 김지우 작가는 비장애인과 당당히 경쟁해 일반전형으로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고 이후 학과 전체 1등을 하며 예술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올해 5월에는 서울 종로에 있는 아트스페이스 호화에서 <어느 낯선 순간>이라는 개인전을 열며, 그림을 매개로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을 세상과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회에서 관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최석원 작가
2024년 5월, 개인전을 개최한 김지우 작가
이처럼 ‘브릿지온 아르떼’가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에게 사회 참여와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사업의 성과를 기반으로 더 많은 발달 장애인 예술가들의 자립과 소통 창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다양한 지원 및 협력이 필요하다. 그 이전에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장애 예술계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다.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예술적 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개성을 존중하는 예술 교육, 전시 기획, 타 예술가와의 교류 등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늘려야 한다. 밀알문화예술센터의 브릿지온 아르떼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실시하는 법정의무교육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의 강사로 활동하며 작가 본인과 그림을 소개하는 기회를 주기적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교육의 장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예술적 교류를 실천하고, 대중과 만남으로써 사회적 편견을 줄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상호 이해를 높이는 기회가 더 많이, 보다 일상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의 예술적 가치가 더 큰 무대에서 인정받기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