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영 국립특수교육원 교육연구사
국립특수교육원에 발령을 받아 처음으로 맡게 된 사업이 ‘실감형 콘텐츠 체험교실’이다. 실감형 콘텐츠 체험교실은 미래형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장애학생의 맞춤형 교육과정 자료를 제공하고자 2021년에 시작된 사업이다.
체험교실 하나에 약 1억 원의 예산이 들어가니, 내가 처음 맡은 2022년에 43개 교실, 43억 원의 예산이 허투루 쓰일까 봐 내내 끙끙 앓으며 공부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덕분에 필자는 사업자, 학교현장, 실감형 콘텐츠 체험교실 디바이스 및 콘텐츠를 두루 공부하며 체험교실 운영에 관한 경험을 쌓았고 2024년에는 과장님의 제의로 국제교육기술컴퓨터학회(ICETC: International Conference of Educaional Technology and Computer)에 실감형 콘텐츠 체험교실의 구축과 활용에 관한 논문1) 을 투고하여 한국 특수교육 디지털 지원사업을 발표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 ICETC에 발표된 논문은 2017년부터 ACM Digital Library에 자료로 구축되며, EiCompendex, Scopus에 등재됨
포르투갈에서의 첫 만남: 지적장애인 부모 단체(APPACDM do Porto), 지역사회센터(ESPACO+T) 방문
지적장애인 부모단체 방문
ICETC 발표에 앞서, APPACDM do Porto라는 현지 기관을 방문했다. 이 기관은 발달장애인들의 치료지원과 자립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포괄하며, 자립 생활과 직업 훈련을 통해 장애학생들의 독립적인 생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인상 깊었다. 기관 내 장애인 지원서비스 센터로는 장애인을 위한 치료 및 사회재활센터, 포용을 위한 활동 및 훈련 센터, 재활 및 웰빙 센터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와 유사한 활동, 운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단, 국가책임교육을 실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포르투갈은 사회적 기부나 후원을 통해 치료지원 서비스가 운영된다는 것, 너무나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장애인들을 지원한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로 방문했던 현지 기관은 지역사회센터(ESPACO+T)이다. 이 기관은 장애인 이외에도 난민, 정신질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예술치료 및 실질적인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매우 큰 규모의 기관이었다. 모두 5개의 센터로 구성되어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다고 소개하였으며, 우리가 방문한 곳은 장애인 예술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행복의 집(Casa da Felicidade)이었다. ESPACO+T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장애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그림과 연극 및 음악 등 예술치료활동을 통해 자기표현을 하며 자존감을 향상해 나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ICETC에서의 발표: 실감형 콘텐츠 체험교실의 구축과 운영
ICETC 학회 발표
ICETC에서의 발표 주제는 “실감형 콘텐츠 체험교실: 대한민국에서의 구축과 운영”이었다. 실감형 콘텐츠 체험교실은 2021년 처음 구축되어, 2023년까지 국내에 총 78개 교실이 구축되었다. 학교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66m2 교실 크기를 기준으로 1교실 당 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며, 총 사업비는 78억 원이다. 기본 모델은 스크린 스포츠와 교과융합 콘텐츠, 안전교육 콘텐츠 등으로 학습할 수 있는 XR스크린존, 모션인식, 트래킹 등으로 상호 작용이 가능한 AR액션플로어존, VR·터치테이블, 홀로그램 등을 이용한 에듀탐험존, 오감을 활용한 4D 스크린존 등 4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으며, 학교의 여건과 학생의 장애 특성에 따라 모델 조정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매 학기 체험교실 담당자는 활용 인원과 시수, 활용 프로그램, 활동 종류, 교사 연수 횟수 및 방법, 활용 상의 어려움 등을 보고하고 있으며, 제출 결과는 차기년도 사업에 반영하여 매년 조금씩 나은 모델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2024년 ICETC에서의 논문 발표는 지난 3년 간의 체험교실 구축·운영 사업을 집대성한 것으로 체험교실의 구축 배경, 구축 과정, 모델 개발, 활용 실태 및 효과, 개선 방안 등을 전 세계의 학계에 알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목적: 장애학생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 차원의 디지털 교육지원 방안 수립 및 효과성 검증
- 대상: 전국의 체험교실 구축 대상학교(78개소) 담당자
- 내용:
· 체험교실 구축: 사업 배경, 교실 선정, 체험교실 모델 및 프로그램 개발, 학교별 특성에 따른 모델 조정 등
· 체험교실 운영: 활용대상, 학습활동 종류, 활용 효과, 외부 연계활동, 교사교육, 교사교육 방법, 활용 시 어려움 등
· 체험교실 발전 방안: 학생의 교육적 요구 및 장애특성에 따른 맞춤형 콘텐츠 개발, 인력 지원 방안 마련, 교사대상 지속적 실습 연수 등을 제언
사실 발표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의 체험교실에서 구현한 기술이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일까, 발표를 하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장애학생에 대한 국가 책임교육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국제적인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전쟁을 딛고 일어서 급속도로 발전한 나라이고, K-컬쳐가 강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했지만, 실제적으로 디지털 기술지원이 장애학생의 교육 현장 곳곳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국제적인 인지도 향상을 위해서는 다양한 언어로 지원되는 홈페이지 구축, 국립특수교육원 유튜브 채널에 사업 산출물 홍보영상을 올릴 때 영어 제목 동시 탑재, 세계 주요 SNS에 국립특수교육원 기관계정 생성 등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ICETC에서 발표된 논문들과 특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메타버스와 생성형 AI를 적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생성형 AI를 둘러싸고, 이를 교육적으로 적용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술도 소개되었지만, 이의 적용과 관련한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특히 홍콩 교육대학교(The Education University of Hong Kong)의 석좌교수이자 학습기술분야 편집장인 Minjuan Wang 교수는 ‘메타버스와 생성형 AI: 그것들은 교육을 혁신할 것인가?(Metaverse and Generative AI: Will They Revolutionize Education?)’라는 강의에서 다양한 생성형 AI 도구를 소개했다. 소개한 영상에서는 놀라우리만큼 발전된 AI 도구들이 등장했는데, 심지어는 영화 장면 사진 한 장으로 원하는 목소리를 입혀 상호작용할 수도 있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들이 이제는 AI 도구들을 통해 특별한 전문성이 없어도 누구나 자연어를 사용하여 만들 수 있고, 또 접근성이 좋은 만큼 윤리교육이 수반되지 않으면 오남용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AI 기술의 교육적 적용에 있어서 가장 핵심 요소는 교사의 역량이라는 것도 강조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사의 역량은 단지 디지털 리터러시에 능란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건강한 산출물을 얻을 수 있도록 어떻게 AI를 활용할 것인가, 어떤 자료를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도 포함되었다. 사실 전세계는 지금 생성형 AI가 뜨거운 감자였다. 우리가 늘 강조하는 ‘개별맞춤형 교육과정 콘텐츠 제공’은 생성형 AI의 시대에는 이미 진부한 표현이었다. 교육계는 AI 기술을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 마련도 고심하는 한편, AI의 장점이 인류에 미칠 파장과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었다. 또, 가장 중요한 관건은 교사라는 의견에도 이견이 없었다. 디지털 기술을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 교사들이 실질적인 훈련과 지속적인 연수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필수적이지만, 교사가 어떤 교육관을 갖고 어떤 가치관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개발 아이디어를 내고, 주제 적합성, 콘텐츠 검토 등을 거쳐 전문가에 의해 개발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누구나 말만 하면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도 오는 길도 이틀에 걸친 장거리 비행인 데다, 공무출장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장애 학생을 위한 디지털 교육지원의 방향과 책무성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값진 출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