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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지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고등학교에 갈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돈을 벌어 학교에 진학하려 고 중국집에서 소위 말하는‘철가방’을 날랐지요. 하루는 어떤 손님이 음식을 주문하는데, 말은 안하고 손짓으로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을 가리키더군요. 저는 자장면을 내왔고, 그 손님은 제게 화를 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은 우동을 시킨 거였어요. 청각장애인이라는 말조차 모르던 때였는데, 그들이 너무 불쌍했고 마음이 아팠지요. 그날 밤 일기에 썼습니다.‘벙어리들의 손발이 되어야겠다’라구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그 꿈을 잊은 채 마라톤 선수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엔 운동을 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경북 대표선수까지 하면서 이름을 날렸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열여섯이 되던 해 일기장에 썼던 그 다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나는 주저 없이 대구에 있는 한국사회사업대학(지금의 대구대학교 전신) 특수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그 후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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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안동영명학교를 설립하기까지 과정과 학교 자랑을 해 주신다면?
영명학교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안동농아학교(현 재의 안동진명학교) 이야기를 해야 할 듯 싶습니다. 특수 교육과를 졸업할 당시 이태영총장께서는 제게 유학을 권유하셨습니다.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하여 후학을 양성하 는 교수가 되라 하셨지만, 나는 장애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부대끼며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현장의 실천가 가 되고 싶었습니다. 처음 교편을 잡았던 곳은 수원농아고등공민학교였습니다. 공부할 교실조차 없어 여러 학년 이 모여 앉아 수업을 하는 딱한 실정이었지만, 전부 합심하여 죽을 고생을 하면서 교사(校舍)를 지어 결국 학교 인가를 받아냈지요. 학교가 점차 기반을 잡아갈 무렵, 나는 고향인 안동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일을 실천에 옮기고자 안동시는 물론 인접한 13개군의 농아인 실태조사까지 실시했 습니다.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 친지들의 거센 만류, 동네 사람들의 비아냥거림... 그 모든 걸 무릅쓰고 학교를 만드는 일은 실로 엄청난 모험이었고 불가능한 도전이었지요. 어렵게 국유지를 물색하여 안간힘을 다해 산을 깎고 교실을 지었습니다. 국유지 점유 범법자로 몰려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고, 혼자 괭이질을 하며 절망했던 적도 많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향토부대며 4H 청년회며 주변의 지인들까지 마음을 더해 주어 1966년 12월에 드디어 농아학교가 정식 인가를 받았습니다. 또 다시 학교의 기반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180여명의 청각장애학생이 교육 받을 수 있는 시설로써 기반이 잡힐 무렵쯤 나는 친구에게 학교를 맡기고 또 다른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경북 북부지구 및 강원 충북 일대에 제대로 된 정신지체학생 교육시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집의 마지막 가산을 털어 지금의 이곳, 안동군 북후면 오산리에 그들을 위한 학교를 건립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안동농학교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반대는 물론 주위의 외면을 극복하면서 죽기살기로 덤벼들었지요. 오직 정신지체학생의 인권과 교육권을 보장해 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영명학교는 나의 분신과 같은 곳입니다.
학교자랑을 하라니,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같은 생각도 듭니다만 우리 학교는 전교직원이 일치단결하여 정말 성심껏 정신지체학생을 지도합니다. 그중에서도 사회재활을 위한 직업교육은 전국 특수학교 가운데 가장 선두주자라 자부합니다. 전국의 많은 특수학교와 장애인관련 기관에서 우리학교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방문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들께‘우리가 꼭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온 맘과 열정을 다해 정신지체장애학생을 교육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그분들이 이곳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외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열정까지도 보고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1월에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학교의 전 교사 80여명이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모두의 마음을 결속시키는 좋은 시간이었지요. 이렇게 한가족처럼 지내는 것이 교육의 효과를 더욱 향상시킬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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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단체 총연맹 상임대표, 한국지적장애인연합회 회장으로 알고있는데, 교장선생님의 역할은?
우리나라에는 현재 24개의 법적 장애인단체가 있습니다. 이들 단체들은 모두 제각각의 특성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장애인의 권리 신장과 복지 추구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때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정부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할 때도 있고, 대정부 건의안이나 장애인 복지서비스 정책 등을 제안하기도 하며 국제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의 장애인단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그런 다양한 일을 대표하여 실천하는 곳이 총연맹입니다. 한국지적장애인연합회는 예전의 정신지체인애호협회의 명칭이 바뀐 것입니다. 지적장애인들의 권익 신장을 위한 국제세미나 실시, 아시아총회 개최 등 굵직한 일들도 많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생활에서의 작은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자 여러 분야의 목소리를 모아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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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과 가장 힘들었던 일은?
행복했던 순간은 뭐니뭐니해도 함께 했던 학생들이 기대 이상으로 성장하여 사회적으로 자립한 모습을 보여줄 때 느꼈던 보람이겠지요. 말소리조차 내지 못했지만 3천 번 이상 훈련시켜 말할 수 있게 되었던 아이, 주의집중도 못하고 도망만 다니더니 어느새 재활시설에서 직업인이 되어 일하는 학생... 그런 모습들을 대할 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을 기억해 보자면 60년대 초 학교 기숙사에서 2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었는데 아이들의 부모가 아이를 내팽개친 채 주민등록지를 옮겨 내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생겼습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게 참 많이 가슴 아팠지요. 또, 병에 걸렸던 학생이 죽자 평 소에는 관심도 없던 부모가 달려와 살려내라 행패를 부린 일도 있었고, 아픈 아이를 들쳐 업고 깜깜한 밤에 병원을 찾아 10리를 뛰었던 일도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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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 셋째도 사랑입니다. 성경 말씀에도 있듯이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참 소중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특수교육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방식이나 표현은 저마다 틀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근본은 끊임없는 인내와 양보와 배려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바쳐 장애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실은 나도 아직 사랑이 서툴지요. 그래서 날마다 더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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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많은 계획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장애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더 애쓰고 싶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물론 재활원에 있는 중증장애인들까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고 싶어요. 대지 10만 여평에 마련한 애명복지촌도 그런 취지에서 설립했습니다. 현재는 화장지, 버섯재배, 축산·원예 등 다양한 아이템을 가지고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고 있지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장애인들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일입니다. 이미 예전에, 장애인 10쌍을 결혼시켜 기거할 아파트를 마련해 주고 사회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준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들의 결혼을 추진하여 그들이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특수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장애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힘든 교육입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도 안되고 뒤처져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 하지요. 특수교육도 일반교육과 방법이 다를 뿐‘사람’을 교육하는 목표는 같습니다. 그래서 일반교육과 마찬가지로 백년을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교사, 학부모, 행정가, 기관설립자 등 각자의 역할이 모두 다르겠지만, 장애인들의 잔존능력을 개발하여 마침내 그들이 생활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가 주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과제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삶’을 택한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면,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다가올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장애인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 말하는 그이 앞에서 싱싱하고 푸릇푸릇한 봄기운을 다시 느낀다. 그는 예전에도 지금도 또 미래에도 특수교육은 물론 장애인 복지를 위해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사랑의 연금술사’로 행로를 이어갈 것이다. 자, 이제 그의 걸음에 우리도 동행자가 되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