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칼럼 - 사람내음 가득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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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특수교육
2021 AUTUMN
제28권 3호
(vol. 123)
오픈 칼럼

사람내음
가득한 사회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이사장
이수성(전 국무총리)
제자들에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선생님,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특수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지면으로나마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나도 교육자의 한 사람이지만 여러분께서 하시는 특수교육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품격을 지키며 나라와 민족의 격조를 높이는 참으로 중요한 영역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였다. 그 시절엔 시각장애인이 길을 걸어가면 어린 학생들이 조롱하고 돌을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꾸짖는 어른들도 그리 많지 않았었다. 그 후 6·25전쟁을 비롯하여 여러 많은 사건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성장해 왔다. 경제도 발전했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가 우리 마음의 풍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경제발전은 이웃 관계를 엷게 하고, 심지어는 가족 간의 불화를 초래했다. 1인 가구와 개인주의도 급속도로 팽창했다. 장애인의 사회통합에도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늘 살아오면서 장애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지녀왔지만, 직접적인 인연은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시 부름의 전화(김정희 대장)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 총장 시절에 한 행사에서 중증장애 여성의 사연을 전달받았다. 이 여성은 가족들의 반대로 한 번도 집 밖에 나가보지 못했는데 그의 어머님의 편지에는 서울대학교를 구경하는 것이 큰 소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우리 대학에 오시라고 연락을 드렸는데, 결국 아버지의 반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가슴이 너무 아팠었다.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한 가지 철학이 있었으니 정부는 가난하고 핍박받고 아프고 외롭고 힘없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랑케는 “훌륭한 나라의 기준은 국토 크기도 아니며, 군사력도 경제력도 아니다. 단 하나, 국민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힘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장애인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경제 상황도 좋아지고 있었고,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어느 정도 높아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과감한 시도를 했다.

그것이 1996년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이다. 보건복지부·교육부·노동부 3개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수행해 오던 장애인 업무를 통합하여 마련한 우리나라 최초의 중장기 장애인 복지 정책이다. 당시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위상이 다른 부처에 비해 영향력이 크지 않아서 실무기관인 장애인복지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아예 국무총리가 하도록 하여 정책이 힘을 받도록 했다. 교육부에서도 이를 기반으로 별도로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시기에 장애인등편의법을 제정하여 정부종합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총리공관에도 편의시설을 설치하였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확대하고, 장애인 동반자에 대한 대우도 확대하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편의시설도 개선하였다. 그리고 장애인이 정책에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 부처에 민간개방직을 만들어 경력이 있는 장애인을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보건복지부의 기구를 개편하여 장애인담당 국장제도를 도입하였다.
마지막으로 어떤 것이 나라를 위해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하여 주무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복지 예산을 천억 원 정도 올렸다. 그리고 장애인 관련 행사에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참석했다. 장애인부모대회, 청각장애인 학술대회, 정립전자 기공식, 장애인단체 신년하례회, 장애인 관련 국정좌담회 등 당시 내 입장으로 가장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참석한 행사장에서 한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울고 계셨다.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자녀가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는 자신이 생을 마감하면 자식이 살아갈 일이 막막하던 것이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모든 책임을 국가가 지는 방안을 연구하라고 보건복지부에 지시했다. 지금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외치는 부모님의 피 끓는 마음을 생각한다면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크다.
장애인 복지정책의 제정과 집행을 수행하면서도 뭔가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그것은 바로 법 집행에 있어 법에 충실하되 따뜻한 가슴이 필요한 것처럼 장애인관련법과 정책을 아무리 훌륭하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생각의 변화가 없다면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책 이전에 수반되는 장애인식에 대한 문제는 결코 박애나 봉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현실은 더욱 어렵다.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특수학교가 지역이기주의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접할 땐 탄식이 앞선다.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다면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자격이 한참 모자란 것이다. 장애인을 폄하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는 무늬만으로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지체장애를 가진 할머니 한 분이 건널목을 건너가시는데, 할머니의 표정이 태연하고 당당하였고 주변의 모든 행인이 그 할머니를 존중하는 표정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총리 재직 시 당시 김양배 보건복지부장관의 제안으로 「장애인먼저」 실천 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말의 사용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고 장애인의 반대말 ‘비장애인’을 학문적으로 뒷받침되도록 하여 널리 사용하도록 계몽하였다.

이제 장애인과의 사회통합은 대세이고, 누구라도 거스를 수 없다. 특히 특수교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학교가 지역사회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고, 학교를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은 장애인 사회통합의 시발점이면서 국가 발전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통합교육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닌 다음 세대 사회통합의 초석이다.

“스승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은 바른 생각, 바른 언행을 할 수 있고, 약자를 돕고 사람을 사랑하며 뜻을 이루어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게 되니 그 은혜는 역여천지(亦如天地)여서 부모님과 한가지라 그 누구도 스승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선생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기에 마음 깊이 경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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