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전남 강진군 평생학습 문인화강사)

Q. 장애를 가지게 된 사연과 장애를 극복하면
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1980년 제 나이 30살에 서울에서 교통사
고로 왼쪽다리 슬 관절 아래를 절단해야만 했
고 전신마취 수술을 7번이나 했으며 병원에
입원 중에 있을 때 남편도 교통사고로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도저
히 서울에서 살 수 없음을 느끼며 무작정 지
금의 강진으로 내려왔는데 현실은 그리 넉넉
하지 않았습니다. 시골생활을 잘 몰랐던 터고
불편한 몸으로 남편을 많이 도울 수도 없었습
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영농을 하면서 여러
번의 실패를 맛봐야 했으며 그 때부터 다음
에 참고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영농일지를 쓰
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31년을 쓰고 있습
니다. 그 일지에는 어떤 일들을 어떻게 했는
지 나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
를 핑계 삼아 그늘에 앉아 쉬지 않겠다고 다
짐하면서 비록 부족한 능력이지만 열심히 노
력하여 내게 주어진 삶을 실패로 장식하는 일
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했습니
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함
께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노력하며 벼농
사, 표고버섯, 한우사육까지 복합영농을 하여
앞서간 영농으로 높은 소득을 올려 여러 번의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전거도
탈 줄 몰랐던 제가 오토바이 운전을 배워서
6Km 떨어진 시장에서 장짐을 오토바이 뒤에
싣고 오토바이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넘어지
기도 하고, 화물차 운전을 배워서 소 먹일 볏
짚을 한 트럭 가득 싣고 비포장 고개길을 넘
어 다니기도 하였으며, 비탈길에서 차를 세우
면 차가 곧 미끄러져 굴러버릴 것 같아 조마
조마한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왼쪽이 의족인
상태에서 클러치를 밟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고도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과정
들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모티브가 되지 않
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난날의 어려웠던 일
들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어요. 지금은
남편과 아들, 며느리, 손자와 손녀 여섯 가족
이 함께 축산업과 표고버섯 재배, 벼농사 등
복합영농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Q. 평생학습의 길로 들어서면서 공부한 것들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평생학습을 하면서가 아니고 수묵화가 좋
아서 오래 전부터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으
며 저는 항상 배움에 대해 갈망하며 뭔가를
배우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주경야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낮에는 일을 해야 했고 주로 밤
에 공부를 했습니다. 밤에 공부하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습
니다. 가족들은 제가 공부한다며 늦은 밤까
지 잠을 안 자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밤에 공부를 합니다. 밤
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주어진 시간 같
아서 좋습니다.
Q. 문인화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현재까지의
성과는?
저는 시골 오지에 살면서 문화생활을 접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아는
지인의 권유로 문인화 작가 송담 김송자 선
생님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서 문인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문인화 공부
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산수화도 배우고 서예도 배우며 최대한 노는
시간을 줄이고 꾸준히 공부해서 지금은 여러
공모전에 약 80회 정도 출품하여 입상하였고
문인화 작가, 문인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
니다. 또, 2009년 강진군 도암면 청년회에서
불우이웃돕기 전시에 그림 15점을 기증하는
등 여러 곳에 작품을 기증하는 재능기부도 활
발히 하고 있습니다.
Q. 늦게 대학 공부를 시작한 동기와 대학 생활을 한 소감?
저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항
상 있었습니다. 저의 꿈이었습니다. 얼마나
대학에 가고 싶어서 갈망을 했으면 가끔 꿈
속에서 가짜 대학생이 되어 강의실에 갔다
가 발각이 되어 도망가는 꿈도 꾸곤 했었습
니다. 그 나이에 무슨 대학이냐고 하는 사람
도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니 교수님들
께서 인격적으로 대해 주신것 도 좋고 교내
식당에서 삼천 원 짜리 밥을 먹을 때는 제가
정말 이십대 젊은 여성으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은 저에게 미완성된
자아를 확립 시켜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말
만 들어도 설레던 대학이란 단어가 어느 새
인가 제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친구들은 제
가 대학에 갈 용기를 낸 것을 부러워했습니
다. 지금도 친구는 전화하면 '어이, 학생! 공
부 잘하고 있나'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Q. 평생학습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을 느낀 일?
내가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동참한 것은
2012년 3월부터인데 재능기부로 시작했습
니다. 평생학습 프로그램들은 강진군에서
제공해 주시기 때문에 원하시는 분은 누구
나 걱정 없이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그분들
중에 휠체어를 타신 분이 계신데 목공예, 색
소폰, 기타, 사군자를 배우시며 시간 활용을
잘 하시어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한 번도 수
업에 불 참하신 적이 없이 타의 모범이 되신
훌륭하신 분입니다. 한 분은 칠순이 넘으셨
는데 몇 년 전 강진에 계실 때 저와의 인연
으로 지금도 가끔씩 전라북도 전주에서 오
셔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체본(體本)을 해
드리면 버스를 타고 밤길을 가시는 뒷모습
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저분들처럼
열심히 사는가?' 하고 스스로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회원들의 실력
이 조금씩 향상된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
낍니다. 또 공모전에 출품하여 모두 입상을
하였을 때도 제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는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Q.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
다. 장애인이라는 생각 속에 스스로 갇혀 지
내지 않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행동에 불
편이 있지만 그럴수록 내실을 튼튼히 다져
야만 어떤 경우에도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누구든 무엇인가를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게 주워진 환경 속에
서 내게 맞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고 항상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장애인이라고
하는 굴레때문에 무엇인가를 시작도 안 해
보고 주워진 환경에 안주해 버린다면 나중
에는 후회만 남겠죠? 누구나 다 재능은 가지
고 있지 않을까요? 나에게 없는 재능을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재능을 활
용하고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장애
는 불편할 따름이지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과 주변의 많은 격려와 사랑이 필요합
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
야 하겠습니다.
운명은 주어진 것이지만 나의 삶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에게 주어진 삶을 가치 없이 보내는 일은 없
어야겠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저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공부하며 배우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입니
다.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0세라면 저는 앞
으로도 20년은 더 공부할 수 있지 않겠어
요?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목표를
향해 가기위함이기도 하지만 제 자신의 성
취감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서
울대학을 갈 수 없듯이 저에게 주어진 여건
에서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며
앞으로도 저에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므
로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항상 배우는 자세
로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
며 살다보면 더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겠
지만 그 보다도 현명한 사람으로 현명한 방
법으로 내 가정에서는 헌신할 줄 아는 아내,
자녀들에게는 존경받는 엄마, 이 사회의 일
원으로서 정말 괜찮은 사람, 눈에 보이는 것
보다 안 보이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남겨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