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우체통

외사랑
마중물이 되고 싶은 교사가 미동도 않는 아이에게

 

제수연 광양백운중학교 교사

 

 

선생님과 숫자놀이를 하고 있는 유치원생들 일러스트 그림

 

벌써 두 시간째 머리를 숙인 채 울고만 있는 녀석을 어떻게 해 야 할지. 격하게 반응이라도 하면은 붙들고 말이나 할 텐데 숫 제 웅크리고 앉아서 묻는 말에도 대
답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 고 있다. 오늘 이런 사단이 난 것은 얼마 전 엄마와의 상담 후 느낀 내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오늘까지 시험기간인데 녀석이 내 바람과 는 달리 너무 건성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다. 옆의 친구는 시간 을 넘겨서까지 문제를 읽고 표시까지 하는데 비슷한 능력, 아니 좀 더 낫다고 생각했던 녀석이 너무 설렁설렁 푸니까 내가 화난 마음에 얘기 좀 하자고 말을 건넸다. 녀석도 별 의심 없이 그러 자했고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둘이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별말 없었는데 선생님이 나한테 심한 소리 하겠어?'
하는 녀석의 생각과 '그래도 두 달 정도 잘 지냈는데 내가 진심이면 녀석도 마 음을 터놓고 얘기하겠지. 나의 진심을 알아주겠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마주앉아 내가 처음 꺼낸 말은 "내가 보았을 때 넌 일반 학급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능력 이 있어. 나는 네가 일반학급에서 도움 실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으 면 좋겠어"였다. 순간 아이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입 을 닫았다.
아뿔싸! 그제야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아이에게 특수학급에 서 나와서 통합학급에서 공부하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이...엄마의 얘기인즉슨 초등학교 때 타 시도에서 전학을 와 서는 얼마 되지 않아 특수학급에 입급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 는데 엄마의 심신이 너무 허약한 상태여서 그냥 받아들이고 말 았단다. 그런데 자꾸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특수학급에 있는 것이 속상하고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에게 말을 했더니 싫다며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상태로 3년을 지내오고 있다고. 혼자 이곳에 아이를 데리고 둥지를 튼 관계로 아이의 입장을 살펴볼 여력이 없다가 더 이상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살펴보니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같다고.
이미 입을 닫은 아이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건 말건 관심이 없 고 자기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뚱한 표정으 로 나를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전 도움실 에서 공부할건데요!" 하고 엄포를 놓았다. 겨우 두 달이지만 그 동안 잘했던 모습을 열거하고, 네가 우리 교실에서 이러한 도움 을 주었는데 너라면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 잘 생활할 수 있다고 말을 해도 빈 메아리처럼 미동이 없었다. 나중에는 불러도 대답 이 없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학부모를 설득해서 통합 학급으로 보내든 아님 특수학급으로 옮기는 걸 고민해 본 적은 있었지만 부모와 교사가 다 원하는데 아이가 고집 피워 일반학 급에 안 가겠다고 뻐튕기는 건 처음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 제였을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을 찔끔 감았다.
순간 내가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우리 집 둘째의 권유로 감정코칭이라는 걸 배워 나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좋은 선생 코 스프레'를 하고 있었나보다. 일단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네 입 장은 생각지도 않고 그냥 선생님의 입장에서 말을 한 것 같다.
미안하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을 때 아이의 울음이 격해졌다. 잠시 동안 격하게 울다가 점차 울음 이 잦아져서 앉아있기에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난 네가 정말 너무 아까워. 네가 우리 교실에 있으면 여러 가 지로 도움을 주니까 난 좋겠지만 너한테 죄짓는 것 같아"
녀석은 꼭 엄마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냥 있으면 절대 특수학급 인지 모르는, 입을 열어도 별반 알 수 없는, 적응력에도 문제가 없는 녀석이다. 처음 이 녀석이 우리 반에 왔을 때 내 눈을 의심 했다. 도대체 이런 녀석이 왜 특수학급에 왔을까? 작업이며 다 른 학생 보조하는 거며 하다못해 게임까지 못하는 게 없는데...
궁금한 마음에 초등학교 때 선생님과 통화를 했는데 복잡다단한 일들이 있었으나 다 묻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에 사정이 생 겨 선정취소를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으로 내게 선정취소해 달 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셨다. 물론 학습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 이다. 그러나 통합학급 아이에게 미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하 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아는 정도의 적응력은 너끈한 아이로 성 장시켜준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유 야 많겠지만 이 아이를 특수학급에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선생님의 복잡다단했던 심사에 나도 무너졌다.
어느덧 20년을 넘긴 나의 교직생활을 돌아보면 복잡다단하고 아찔했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제껏 아무 탈 없이 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복 받은 거라는 걸 요즘에서야 느낀다. 교사 로서 내가 가장 무기력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내 진심이 겉돌고 있다는 걸 느끼는 부모상담 장면이었다. 아이의 초등학교 선생 님도 그랬을 것 같다. 심신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조그만 상 처에도 훅하고 쓰러질 것 같은 사람과의 진심어린 대화는 참으 로 힘들다. 더구나 상대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입장이고, 그 것도 원치 않는 상태의 새로운 삶인데다 준비가 너무 막막한 사 람이었으니까.
아이가 울다가 내 얼굴을 본다. 나도 빤히 쳐다보니까 애가 웃는다.

 

"일반학급에서 생활하는 게 어떤 점이 어렵냐?"
"교실에서 하는 공부는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자요"
"초등학교 때 네가 어떻게 특수학급에 들어오게 된 건지 알아?"
"아니요. 몰라요"
"누가 너한테 도움실 가라고 말했어?"
"초등학교 5학년 담임샘이요"
"그래, 공부를 안했어?"
"말도 잘 안했어요. 귀찮아서""초등학교 때도 교실에서 잤어?"
"아니요. 근데 학년이 올라가니까 너무 어려워서...."
"도움실 생활은 재미있니?"
"네. 그래서 도움실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너 하는 거 봐서"

 

어릴 적 우리 집 마당 한쪽에 펌프가 있었다. 작은 우물 옆에 펌프가 있어 마중물을 넣고 얼른 펌프질을 해야만 쉽게 물을 퍼 올릴 수 있었다. 팔심이 부족한데다 기술까지 부족했던 나는 펌 프가 고물이라고 엄마에게 일러바쳤지만 엄마의 손길이 미칠 때 마다 풍성하게 쏟아지던 그 물줄기를 잊지 못한다. 지금 내가 아 이에게 내민 손과 말은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저 아래 고인 물 을 마중하러 간다는 의미의 마중물! 나는 저 아이의 깊은 내면 에 숨겨진 자신감을 마중할 수 있을까?두 시간을 시위하듯 울고 나가는 아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기에 한 마디 거들었다. "네가 싫어해도 난 다시 얘기할거야. 생각보다 네가 괜찮은 사 람이라는 걸... 그리고 일반학급에서 생활하는 것도 말이야. 잘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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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특수교육 여름호 제22권

  • 01 프롤로그
  • 02 오픈컬럼
  • 03 스페셜테마
  • 04 톡톡Talk
  • 05 지상수업
  • 06 현장투어
  • 07 차 한잔을 마시며
  • 08 돋보기
  • 09 월드리포트
  • 10 행복우체통
  • 11 특수교육 Q&A
  • 12 특수교육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