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우체통

아름다운 동행

 

이수배 한국우진학교 교사

 

 

선생님과 사과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학생들 일러스트 그림

 

점심시간이다.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나와 부담임 그리고 특수교육보조원 이렇게 세 명이 밥을 먹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 의 장애 정도가 중증이기 때문에 일대일로 섭식지도를 해야 한다. 소요시간 도 한 시간을 꽉 채운다. 그래서 매일 두 분의 어머니가 당번을 정해 점심 식 사를 도와주고 있다. 오늘은 재훈이와 동우 어머니가 오셨다.
오늘도 역시 동우는 밥을 먹으려는 의욕이 없다. 도무지 입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교에 왔다는데, 점심까지 먹는 게 영 시원치 않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데 먹는 것이 부실해서 걱정이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먹여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동우야, 반찬이 마음에 안 들어? 아침도 못 먹고 왔잖아. 조금만 먹자. 엄마가 저녁때 맛있는 거 해줄게."
안타까운 어머니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음식을 입에 넣어주어도 좀처럼 삼키려고 하지 않는다. 어머니 표정이 조금씩 상기되기 시작했다. "어서 먹어. 이렇게 안 먹어서 또 병원에 가고 싶어? 엄마 화낸다." 정말 엄마는 화가 많이 났다. 먹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식판을 치우 려고 정리를 하다가 동우를 한 대 쥐어박는다. 동우가 눈물을 흘리며 울자 다시 자리에 앉더니 가방에서 요플레를 꺼낸다. "그래, 이거라도 먹자. 미안해. 그런데 왜 먹는 걸로 이렇게 엄마를 힘들 게 해. 밥을 잘 먹어야 건강하지."

 

재훈이 녀석도 동우와 다를 바 없다. 처음 몇 숟가락 받아먹 더니 완강하게 엄마의 손을 밀어낸다. 생선이라도 있으면 그나 마 먹으련만, 오늘 반찬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볼을 눌러 강제로 입을 벌려 한 숟가락 밀어 넣었는데 씹지 않고 물 고 있다. 어머니가 아무런 표정 없이 재훈이를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
"재훈아, 우리는 왜 이런 인연으로 만났니? 더 좋은 인연으로 도 만날 수 있었잖아."
재훈이 어머니의 표정, 그리고 자조적인 말투로 내뱉은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슨 의미였을까? 평소 마음속에 담아두 었던 생각이 재훈이가 밥을 먹지 않아 속상해서 무의식중에 튀 어나왔을 것이다.
지금처럼 장애아들과의 인연이 아니라, 건강한 부모 자식으로 만났으면 하고 얼마나 마음속으로 상상했을까? 잘 생기거나 똑 똑한 자식으로 만났으면 하는 욕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건 강해서 가족 간에 누릴 수 있는 사소한 행복을 얼마나 꿈꾸었을 까? 그 소박한 바람을 가슴 깊이 묻어야 하는 재훈이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했다.
"선생님,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니에요. 오늘 재훈이가 왜 이렇게 안 먹죠? 아침을 많이 먹었나 봐요."
"제가 조금 전에 한 말 때문에 쳐다보시는 거죠?"
"어머니 얘기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그렇잖아요. 건강한 부모 자식으로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겠 어요. 그렇지만 지금도 행복해요. 재훈이 아빠가 늘 그러거든 요. 재윤이가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으면 평생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을 거라고. 제 복이죠 뭐.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 갖고 살라 고 재훈이를 보내주셨나 봐요."
"그래요. 행복해보여요. 좋은 인연이라고 하기는 억지가 있지 만, 어머니와 재훈이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네요."
재훈이 어머니는 자신의 복이라고, 자신의 팔자라고 아쉬움을 덮으며 사태를 수습했다.
나는 안다. 장애와 건강을 갖지 못한 자식을 둔 부모님들의 소 망이 무엇인지를. 어제보다는 오늘이, 올해보다 내년에는 조금 만 더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물론 그 소 망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소망을 가지겠지만, 또 다른 소망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오늘의 힘든 일상을 행복하게 가꾸 어 갈 텐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표현할 때, 흔히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과, 마른 논에 물 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농부의 마음에 비유한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 면 이 말에 너무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에 더 큰 행복 을 추가한다면, 아픈 아들의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을 보는 부 모 마음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맺게 된다. 크게는 부부의 인연이 나 친구의 인연, 그리고 직업과의 인연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인 연은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운명적으로 만난 인 연이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다. 한 생명이 어머니 뱃속에 잉태 되는 순간 맺어진 운명적인 인연이기에 조금 엇나간다고 하더 라도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간혹 더 많이 가진 부모 밑에서 태 어나지 못한 것을, 더 잘난 자식을 두지 못한 것을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조물주가 맺어준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별로 먹은 것이 없는 점심시간은 전쟁을 치르듯 지나갔고, 오 후수업을 마치고 하교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 해 엄마들이 오셨다. 재훈이는 학교 근처에서 운영하는 치료실 에 작업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고, 동우는 병원물리치료 일정 이 잡혀 있다. 그런데 요즘 통 먹지도 못하는 동우는 물리치료 를 포기하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동우야, 엄마가 해주시는 맛있는 저녁 많이 먹고, 내일은 기 운차려서 씩씩한 모습으로 만나자."
"네."
엄마가 대신 대답한다.
"재훈이도 찰떡궁합 엄마랑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
점심시간 일이 생각났는지 엄마가 씨익 웃는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휠체어를 밀고 복도를 빠져나간다. 뒷모 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으로 정겹다. 화폭에 담는다면 그저 건 강한 아이를 어머니가 유모차에 태워 밀고 가는 풍경 같을 것이 다. 재훈이 어머니가 갑자기 뒤돌아본다.
"선생님, 책상 위에 냉커피 있어요. 시원하게 드시고 행복한 오후 보내세요."
열한 살, 열두 살 아이들이지만 아기 같은 녀석들이다. 아기 같은 아이들을 십년 넘게 키우고 있는 어머니들. 그런 아이들 다섯 명과 매일매일 생활하는 선생님. 남들이 봐서는 도무지 웃 을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우리는 더 많이 웃고 감사하며 행복하 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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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사랑

 


현장특수교육 여름호 제22권

  • 01 프롤로그
  • 02 오픈컬럼
  • 03 스페셜테마
  • 04 톡톡Talk
  • 05 지상수업
  • 06 현장투어
  • 07 차 한잔을 마시며
  • 08 돋보기
  • 09 월드리포트
  • 10 행복우체통
  • 11 특수교육 Q&A
  • 12 특수교육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