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싱가포르의 장애인 평생교육은 시설이나 제도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포용’과 ‘마인드셋’, 즉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였다.
학교에서 성인기로 이어지는 교육과 고용의 흐름, 그리고 지역사회와 기업이 함께 만드는 지원 생태계는 모두 이 기본 철학 위에 세워져 있었다. 바로 제도보다 사람을 먼저 두는 '평생교육의 관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애인 평생교육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 정규교육과정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활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장애인 평생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싱가포르의 여러 기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던 두 단어가 있는데 바로 ‘포용(inclusion)’과 ‘마인드 셋(mindset)’이었다. 이곳에서는 장애인 평생교육을 논할 때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장애인-비장애인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었다. 교육연구사로서 나는 그동안 평생교육을 정책과 제도의 틀 안에서만 인식해 왔는데 싱가포르 장애인 평생교육 현장은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배움을 실현하며, 제도 속에서 이러한 가치가 가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지난 9월 지자체 장애인 평생교육 업무담당자들과 함께 싱가포르의 장애인 평생교육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그곳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펼쳐 보고자 한다.
싱가포르의 장애인 평생교육에서 학교 교육과 성인기 평생교육의 가교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관이 있는데 바로 APSN 델타 시니어 학교(DSS)이다. 1976년에 설립된 비영리 기관으로 7세에서 21세의 경도 지적장애인에게 특수교육과 직업훈련, 고용지원을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싱가포르 직업기술자격제도 기반의 직업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식음료, 호텔·숙박, 리테일, 조경·원예 총 4개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직업 적성에 따라 각각의 과정에 배치된다. 교내에는 모의 카페, 마트, 호텔 객실과 같은 실제 직업 현장과 유사한 실습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학생들은 물품 판매, 객실 관리, 조경 등 실무 중심 활동을 통해 차츰 고용을 위한 준비를 해나간다. 모든 것이 서툴지만 마냥 즐겁게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배움이 곧 행복을 위한 원동력임을 느낄 수 있었다. DSS는 기업 및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지역사회 내 카페, 식당, 호텔, 상점 등과 연계한 실습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들은 장애인 지원과 고용을 어렵고 특별한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졸업 이후에는 Centre for Adults라는 APSN 산하기관의 사회성 강화, 건강관리 교육, 문화 체험과 같은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에 연이어 참여하면서 평생학습을 이어간다.
이번 연수에서 가장 관심 있게 살펴본 기관은 사회가족발전부(이하 MSF)였다. MSF는 싱가포르의 장애인 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정부 부처로서, 장애인 서비스 체계를 조율하고 관리하면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한 포괄적인 정책 기반을 제공한다. ‘건강한 개인, 강한 가족, 돌봄 사회’ 육성이라는 사명 아래 Enabling Business Hubs,1) Open Door Programme2),
Helping Hand 제도3)와 같이 장애인을 직접 지원하는 다양한 사업과 정책들을 펼쳐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포용적 사회 조성을 위해 산하기관과 연계한 i’mable 캠페인4) 과 HIRE 워크숍5) 같은 인식개선 사업들을 볼 때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청사진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고용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기관을 인증하는 장애인 포용 우수기업 인증제나 주간활동센터 운영과 같이 우리의 장애인 고용 및 돌봄 제도와 유사한 부분도 있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MSF의 핵심 전략은 ‘Enabling Masterplan 2030(EMP2030)’이다. 이는 장애인이 잠재력을 발휘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행할 수 있는 따뜻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장기 로드맵으로 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 시민, 민간 및 공공 부문이 함께 참여해 수립하였다. EMP2030은 다음의 3대 전략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1) 장애인에게 지역 기반 고용 기회 제공, 통합고용 모델 확산
2) 장애인의 직무 재설계를 위한 보조금 지원, 최대 1년간 직무 유지 지원, 장애인 직원 및 관련인력 대상 훈련 비용 보조
3) 대중교통에서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식별하고, 주변 승객과 교통 직원에게 알릴 수 있도록 지원
4) SG Enable이 주관하는 모두가 장애 수용과 포용성을 실천하도록 격려하는 캠페인
5) Enabling Academy가 제공하는 고용주 대상 훈련 프로그램
1.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 평생학습 지원 강화
2. 장애인의 자립적인 삶 촉진
3. 포용적 환경 조성
EMP2030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14개 핵심 영역 중 장애인 평생교육과 관련된 몇몇 영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핵심 영역 3 – 학령기 이후
장애인은 평생학습을 위한 다양한 기회와 자원 활용
• 핵심 영역 4 – 포용적 고용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인정받고, 안정적인 고용 달성
• 핵심영역 5 – 포용적 생활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은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연속적인 서비스 제공
• 핵심영역 14 – 포용적 공동체
국가는 장애인을 향한 긍정적 태도와 마인드셋을 갖춘 따뜻하고 포용적인 공동체의 본보기
MSF는 포용적 사회 구현을 위해 공공·민간·시민사회와 함께하고,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참여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싱가포르의 정책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만들어지기보다는 사회적 가치와 요구에 근거한다는 실용주의적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아닐까?
마지막 날 방문한 Enabling Village는 싱가포르 MSF 산하 전담기관인 SG Enable이 운영하는 장애인 통합 복합시설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2015년에 문을 열었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학습하고 근무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포용적 커뮤니티 공간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에 따라 설계된 이곳은 휠체어 접근성, 점자 표기, 촉각 유도 블록, 청각 루프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한 접근시설을 갖추고 있다. 즉, 공간 자체가 포용의 철학을 담고 있다. Enabling Village는 장애인 전문교육, 직업훈련, 고용, 돌봄, 보조공학 대여 서비스를 한 공간에서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시설 내에는 카페, 레스토랑, 소매점 등 다양한 사회적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장애인 직무훈련과 고용을 동시에 수행하는 직업 현장으로도 활용된다. 예를 들어, Bailey & Patch는 장애인 제빵사가 일하는 베이커리 겸 애완동물 카페이며, The Art Faculty는 발달장애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Enabling Village의 이러한 포용적 고용 모델은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인식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었다.
마을은 일곱 개의 주요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 NEST
취업 전 평가, 진로 상담, 직업 추천 및 알선, 돌봄 관련 지원 서비스 운영 기관 입주
• Playground
체육관, 유치원, 뇌졸중 지원시설, 가족 지원기관 입주
• HIVE
직업 환경 프로토타입 불로, 자폐자원센터, 다양한 작업장 및 사무실
• Village Green
단지 중심부, Tech Able(보조공학 체험·전시센터)과 The Art Faculty(발달장애 예술가 작품 판매) 등 입주
• UOB Ability Hub
다목적 행사 공간, 워크숍, 강연, 전시, 스포츠·레크레이션 활동 가능
• Canopy
다목적 교육·학습 허브, 식음료 및 베이커리 기업 입주
• Caregiver’s Pod
간병인 전용 전용 휴식·학습 공간, 자기주도형 돌봄자 역량강화 프로그램 운영
또한 Enabling Village는 새로운 장애인 지원기술과 정책을 현장에서 실험하고 검증하는 테스트베드(Test-bed)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직원이 우리를 안내해 주는 내내 보여주었던 유쾌하고 활기 가득한 모습은 싱가포르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임을 체감케 하였다.
ASPN 관계자 미팅
ASPN 리테일룸 수업
싱가포르 장애인 평생교육에도 분명 우리와 유사한 제도 및 시스템이 존재했다. 하지만 교육-훈련-고용-복지가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 정책 전반에 녹아있는 ‘포용’과 ‘마인드셋’의 가치가 자립과 취업으로 연결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우리나라도 장애인 평생교육법이라는 더욱 견고해진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선순환적 체계 구축과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가능성과 능력을 존중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포용적 태도와 편견 없는 시선이 중심이 될 때 우리의 평생교육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