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레시피
서울맹학교는 1913년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학교로 개교하여 114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시각장애학생 교육기관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실력을 쌓아 능동적인 사회참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자신을 바르게 알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학생’,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창의적인 학생’, ‘예의를 갖추고 인성이 바른 학생’ 육성에 중점을 두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유치원부터 전공과까지 6개의 과정, 전체 38학급에서 약 160명의 학생이 교육받고 있는 국립 특수교육기관이다.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1학급이 기본 교육과정을, 7학급이 공통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급에서는 연간 170시간을 ‘일상생활 활동-생활적응(시각중복)’ 영역을 교육하고, 나머지 학급에서는 생활적응(시각중복)을 토대로 수준별 일상생활훈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생활 습관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시각중복장애 학생들에게 있어 생활적응 교육과정에 기반한 일상생활훈련은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행동하는 힘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맹학교는 일상생활 활동-생활적응(시각중복)을 충실히 반영하여 일상생활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과정은 학생들이 잔존 시각과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환경을 이해하고 탐색하며, 독립적인 삶에 필요한 기초 기능을 기르도록 돕는다. 또한 다감각 활동과 잔존 시각 활용 방법을 배우고, 자립적 태도와 적응 능력을 키워 나간다. 학생들은 감각 자극을 경험하고 이를 지각·변별하며, 감각 정보를 통합해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힘을 기른다. 더불어 자신에게 맞는 의사소통 방법을 선택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기술과 태도를 익히며 가정·학교·지역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 간다.
이 글에서는 우리 학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일상생활 활동 교육과정의 방향과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학생들은 감각 자극을 경험하고
이를 지각·변별하며, 감각
정보를 통합해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힘을 기른다.
1. 생활 질서와 학교 규칙
맛있는 요리를 위해 좋은 재료가 필요하듯, 일상생활훈련의 가장 중요한 기본 재료는 ‘생활 질서’와 ‘학교 규칙’이다. 이는 생활적응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공동체 생활의 기초로, 학생들이 학교라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서울맹학교에서는 등교부터 하교까지 하루 전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활 질서를 익히도록 지도한다. 학생들은 아침에 등교하면 교실에 들어와 가방을 정리하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처음에는 교사가 손을 잡아 도와주지만, 점차 스스로 가방을 열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도록 유도한다.
급식 시간에는 질서를 지키고 예절을 실천한다. 처음에는 가는 방향, 자신의 자리를 잘 몰라 교사의 안내를 일일이 받지만, 반복된 경험을 통해 스스로 급식실을 찾아가고, 바른 자세와 방법으로 식사를 하고 잔반 처리까지 하고 자리를 정돈하고 감사 인사를 하고 교실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복도에서 이동할 때는 안전한 보행 방법을 익힌다. 손잡이를 잡고 걷거나, 블록을 활용하는 방법을 잔존시력과 감각으로 이동하는 반복된 연습을 통해 점차 혼자서도 자신 있게 걸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규칙 준수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공동체 속에서 안전과 배려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며 배우도록 한다.
가방을 챙기는 모습
2. 자주적인 생활 능력
일상생활훈련의 핵심은 ‘자주적인 생활 능력 기르기’이다. 이는 생활적응 교육과정의 목표와 직결된다.
옷 정리나 개인 물품 관리 활동에서 교사는 처음에는 하나하나 손을 잡고 함께 하다가, 점차 말로 안내하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도움을 줄여 나가는 과정에서 학생은 작은 성공 경험들을 쌓고 자신감을 키운다.
또한 학생들이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을 활용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도록 지도한다. 말, 몸짓, 표정뿐 아니라 촉각 상징이나 사물 단서를 활용해 요구를 표현한다. 예컨대, 한 학생은 물을 마시고 싶을 때 컵을 손에 쥐어 보이며 의사를 표현하고, 다른 학생은 촉각 카드에 새겨진 ‘물’ 기호를 교사에게 건네고 또 다른 학생은 ‘물’ 음성 출력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요구를 전달한다.
실수 또한 중요한 학습 과정으로 존중한다. 양치질을 하다 치약을 너무 많이 짜거나 옷에 온통 치약을 묻히는 경우에도 교사는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격려하며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이런 과정 속에서 진정한 배움이 이루어진다.
일상생활훈련의 핵심은
‘자주적인 생활 능력
기르기’이다. 이는
생활적응 교육과정의
목표와 직결된다.
3. 수준별 지도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와 방식으로 배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서울맹학교의 일상생활훈련은 ‘수준별 지도’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생활적응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개별화 교육과정과 일치한다.
어떤 학생은 기본적인 개인위생 관리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 따라서 손 씻기, 양치하기, 옷 갈아입기 같은 기초 기술을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또다른 학생은 보다 복잡한 생활 기술, 시간에 맞춰 이동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준비하는 활동을 연습한다. 스스로 시계를 보고 “지금은 음악실 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며 음악책을 챙기는 모습이 큰 목표가 될 수도 있다.
학생마다 활용 가능한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학생은 촉각 자극을 중심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또 다른 학생은 잔존 시각을 활용해 물건을 탐색한다. 예컨대, 한 학생은 양치컵의 위치를 손끝으로 더듬어 찾고, 다른 학생은 희미하게 보이는 색깔 대비를 활용해 칫솔을 구분한다. 이러한 맞춤형 지도는 학생들이 자신의 감각을 활용해 생활 속 적응 능력을 보다 자연스럽고 안정적으로 키워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양치질
4. 체계적 계획
서울맹학교의 일상생활훈련은 체계적인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다. 즉 일상생활 활동 생활적응을 토대로 학생별로 연간 일상생활훈련 목표를 수립하고, 월별·주별 지도 계획을 세워 시기에 맞는 교육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학기 초에는 교실 이용 방법과 기본 규칙을 중심으로 지도한다. 학생들은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고, 가방을 정리하며, 수업 준비물을 꺼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후에는 개인 위생·물건 관리·시간 지키기 등으로 확장한다.
계절이나 학교 행사에 맞춘 생활 기술도 함께 지도한다. 여름철에는 손수건 사용법을 배우고, 겨울철에는 외투를 입고 벗는 방법을 연습한다. 학교 행사 때는 줄을 서서 이동하거나, 무대에 오르내리는 방법을 배우며 실제 생활과 연결성을 높인다.
안전한 보행 방법 익히기
생활적응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편안하게
도전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환경을
중시한다.
젓가락질 연습
5. 배움의 환경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한 분위기’이다. 생활적응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편안하게 도전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는 환경을 중시한다. 교사는 학생들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격려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예컨대, 한 학생이 처음에는 교사의 손을 꼭 잡고만 걷다가, 어느 날 혼자서 두 걸음을 내딛었을 때 교사의 따뜻한 격려는 그 학생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준다. 또 다른 학생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스스로 문 앞에 있는 음성출력 버튼으로 “화장실 가고 싶어요”라는 의사를 표현했을 때, 교사의 미소와 칭찬은 그 학생의 의사소통 능력을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스스로 해냈구나.”,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어.”와 같은 말 한마디는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이러한 긍정적 경험이 쌓일수록 학생들은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서울맹학교의 일상생활훈련은 특수교육 기본교육과정의 ‘일상생활 활동 - 생활적응(시각중복)’ 교육과정을 충실히 반영하여, 학생 개개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학교·가정·지역사회 속에서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교육과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 배움은 점차 큰 자립의 힘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스스로 손을 씻고 정리하는 작은 행동이 쌓여 결국에는 학교 생활 전반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힘으로 확장된다. 또, 급식 시간에 질서를 지키는 경험은 지역사회 속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지키는 능력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학교 안에서의 성취에 머무르지 않는다. 학생들은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할 때도 자신감을 가지고 참여하며, 지역사회 속에서도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작은 도전이 쌓여 큰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서울맹학교의 일상생활훈련은 바로 이러한 ‘작은 도전에서 시작되는 큰 변화’를 실천하는 장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 가는 따뜻한 배움의 과정은 앞으로도 학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