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테마

이슬람식 특수교육을 배우다: 알라께서 날 불렀다고?

강원명진학교 교사 이정한

 

안녕 자키! 나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졸업식날 올 수 있으면 올게.

 

자키는 인도네시아 라주알디 이슬람 국제학교에서 3개월간 특수교사인 팍부앗과 내가 공동 지도했던 자폐아이다. 떠나올 때 그렇게 약속했지만 결국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대신 근사하게 차려입은 자키와 팍부앗 선생님의 졸업식 사진을 왓스앱 메신저로 받았다. 역시 카메라는 쳐다보지 않고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한 자키의 표정을 보니 새삼 인도네시아에서의 일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2017년 3월에 모집 공문을 보고 다문화가정 대상국가와의 교육교류사업 프로그램에 신청했는데 운 좋게 면접시험에 통과해서 삼 개월간 인도네시아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열 명의 파견교사 중에 특수교사는 혼자 뿐이었다.
아시아의 현지에 가면 특수교사에 대한 선호가 높으니 앞으로 능력 있는 특수교사들이 많이 해외로 진출했으면 좋겠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최근에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장애인 교육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는데, 막상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특수교사가 가면 그야말로 맨발로 뛰쳐나올 지경이다.

 

자폐아 수영 모습 사진
[사진 1] 자폐아 수영수업
라주알디 스쿨 캠퍼스 정경
[사진 2] 라주알디 스쿨 캠퍼스

 

내가 파견됐던 자카르타의 라주알디 글로벌 이슬람 학교는 교육열이 가장 높은 상류층을 위한 사립학교였는데 우리나라의 특목고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고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됐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먼저 통합교육을 실시한 학교여서 캠퍼스 한가운데 특수교육 센터까지 번듯하게 자체 예산으로 지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학교에 배치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도네시아는 종교가 국민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나라다. 이슬람에서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하나는 “사람은 입으로 많은 죄를 짓는다. 장애인들은 그런 면에서 평생 순결무구한 삶을 살기 때문에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알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앉게 된다”, 또 하나는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완벽한 신께서 실수를 하셨다는 의미가 되고 이는 심각한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이다.
이슬람에서 신성모독은 성문법보다 우선하여 처벌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옆에 사람이 그 사람을 죽여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학급마다 특수교사가 한 사람씩 배치되어 있었는데 모두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신 분들이었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특수교사는 일교시에 아이 옆에 앉아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하거나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며 특이 사항 등을 수첩에 기록한다. 그리고 학습장애 아이들은 교실 한 켠에서 교사와 일대일로 자신의 수준에 맞춘 학습지로 공부를 한다. 나는 자폐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늘 오전에 수영을 하러 갔다.

 

코란 읽는 아이들 모습
[사진 3] 코란 읽는 아이들
한국 문화 수업 모습
[사진 4] 한국 문화 수업
현지 문화체험 사진
[사진 5] 현지 문화체험
현지 아이들이 열어준 작별파티 모습
[사진 6] 아이들이 열어준 작별파티

 

인도네시아는 학교, 호텔, 아파트 등에 수영장이 매우 흔하고 관리가 잘 돼 있다. 오전에 수영장에 가면 대부분의 자폐 아이들이 와 있었다. 풀(Pool)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스스로 즐겁게 잘 놀며 기분도 좋아진다. 수영 후에는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고 교내 특수교육 센터에 가서 스스로 수영복 세탁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까지는 자키의 원래 담당 특수교사인 팍부앗이 만들어 온 학습지를 함께 풀었다.

 

오후가 되면 나는 자키와 헤어져서 다른 학급에서 매일 두시간씩 한국 문화 수업을 했다. 수업은 한복체험, 한글로 이름 쓰기, 민속놀이 체험, 노래 배우기 등 석달 동안 매주 한가지씩 주제를 정해서 12주 분량을 준비해서 갔다. 아이들이 워낙 한국 문화 수업을 좋아하고 적극적이어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지만 한국 중학교 수준의 단어만 알고 있으면 수업을 하는 데 큰 불편은 없다. 수업을 한번 해보면 그다음부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매우 쉬워진다. 정 부담스럽다면 가기 전에 몇 번 수업 연습을 해보면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숙소는 학교에서 구해 준 주상복합 아파트 같은 곳이어서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1층에 가면 스타벅스도 있어서 퇴근 후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피로를 풀기도 했다. 그리고 파견기간 동안 짬짬이 보로부두르 사원과 파랑트리티스 해변 등 정말 이국적이고 멋진 곳을 다니며 문화체험을 하고 나시고랭, 가도가도, 박소 등 유명한 인도네시아 음식을 실컷 맛본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도 당시 한류 열풍이 불고 있어서 아이들뿐 아니라 학부모님들도 거리에서 만나면 무척 반가워해 주셨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모습들이다. 석 달을 보낸 후 인도네시아는 나에게 무척 친근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8월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 두 달 뒤에 아이들이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와서 우리 학교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하며 학생들끼리 교류회도 하고 함께 관광도 다녔다. 나도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자카르타와 발리 등에 여행을 가고 그곳에 있는 친구와 학생들도 다시 만나볼 생각이다.

 

 

 

스페셜테마

다문화가정 대상국가와의 교육교류사업

이슬람식 특수교육을 배우다: 알라께서 날 불렀다고?

교원해외파견(ODA) 사업

해외 봉사의 ‘꿈’


현장특수교육 가을호 제26권

  • 01 프롤로그
  • 02 오픈 칼럼
  • 03 모두가 행복한 수업
  • 04 화제의 특수교육인
  • 05 현장투어
  • 06 톡톡Talk
  • 07 스페셜테마
  • 08 차 한 잔을 마시며
  • 09 월드리포트
  • 10 여가+
  • 11 스토리+
  • 12 특별기획
  • 13 특수교육동정
  • 14 소통마당
  • 15 독자코너